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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Sep 26. 2023

딸의 중간고사

아침에 눈을 떠 행복하기를

딸아이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어제는 영어와 국어 오늘은 수학과 과학을 치렀다. 과목 수도 많지 않고 이제 겨우 중2짜리 아이의 시험일뿐이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제, 시험을 끝내 고 온 아이에게 고기라고 구워 먹이려고 바리바리 장을 봐서 들어오는 길에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미안해."


아이는 대뜸 울먹이며 말했다. 가슴이 철렁 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두근거렸다. 뭐든 과장하는 사춘기 아이인지라 분명 약간의 오버가 숨어있을 것은 분명했지만 그래도 아이의 풀 죽은 목소리는 가슴이 아팠다. "집에 와서 이야기해" 라고 얼른 전화를 끊었는데, 집 앞에서 전화를 했는지 5분 뒤 아이가 들어왔다.


"시험이 많이 어려웠어?"

나의 질문에 아이는 갑자기 세상 서러운 일이라고 겪은 사람 마냥 말을 쏟아낸다.

"아니, 어떻게 한 번 밖에 안 가르치신 데서 낼 수가 있어. 영영 단어 말이야."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의 이야기를 잘랐다.

  "영영 단어 공부 안 했어? 그건 기본으로 해야지. 엄마가 프린트해 준 것도 있잖아. 엄마가 가르치는 애들은 다 기본으로 그거부터 다 외워."


점점 굳어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아차 싶었지만, 나 또한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영어원서도 읽고 스카이프로 매주 화상 통화하는 미국 선생님과 스스럼없이 대화도 하니 그래도 아이가 이 정도는 당연히 하려니 생각하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의 짜증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는 새초롬한 얼굴로 입을 닫아버린 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른 방으로 따라 들어갔더니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빛이 역력했다. 그래도 기분을 풀어주려 계속 말을 걸었더니,  아이는 드디어 엉엉 소리 내 울어버렸다.


"어렵다고 해서 문법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문법이 안 나왔다고..."




엄마가 영어강사이고 그중 대표과목이 문법이지만 딸아이에게 문법공부를 따로 많이 시키지 않았다. 문법보다는 책이나 아티클을 더 읽기 바랐고 2년여의 미국에서 있던 기간에 만난 그곳 친구들이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올 때 그 아이들과의 영어 대화가 어색하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한국의 중 고등 내신 시험은 어느 정도의 문법적 지식을 쌓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딸아이가 열심히 문법 공부를 하는 동안 나 또한 그동안 봐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기에 아이가 스터디카페에 가서 장문의 질문을 해 올 때마다 친절히 설명을 해줬다. 밥상머리 질문에도 설거지하다 말고 달려왔고 계란 프라이를 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한 문법문제가 나오지 않았으니 아이가 속상할 만한 일이었다.

딸아이와 이런식의 카톡을 2주 넘게 주고 받았다.


딸아이는 나와는 다르게 성실한 편이라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제법 잘 해내고 있다.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딸아이는 꼭 올백을 맞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겨우 하나 틀린 그 시험지가 그리 서러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할수록 백점을 맞겠다는 것이 아이만의 순수한 요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연중 오가는 말속에서 중학교 시험 정도는 당연히 백점을 맞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나의 본심이 전해졌을 게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야기하면서도 나 자신은 그렇지 못한 채 아이가 조금 더 잘 해주길 바라는 시커먼 속내가 자꾸 밖으로 훤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네가 원하는 걸 해'라는 입바른 소리로 무장했지만 실은, 아이가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쯤 가서 엄마 어깨에 뽕 좀 들어가게 해 주길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시험쯤이라는 나의 말투부터가 잘못이었던 것이다.


남의 자식에게 무한한 관대함은 내 아이에게는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이라 했다. 하지만 엄마가 지나치게 아이 교육에 관여한다는 남의 집 이야기를 할 게 아니었다.  시험 한 문제  틀렸다고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내 아이부터 꼭 안아줬어야 했다.


<내면소통>의 김주환 교수님은  "아침에 일어나 아이가 행복한지를" 물어보는 게 가장 먼저 부모가 해야 할이라고 말씀하다. 아이를 뱃속에 품었을 때 아이가 열 손가락 다 달린 아이이기를 아이가 갓 세상에 태어났을 때 밝고 건강한 행복한 아이이기를 바랐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어느새 한 가지씩 이거 하나쯤은 저것 하나쯤은 아이에게 요구하고 바라는 게 늘어났던 것이다. 아이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자기 방 정리나 집안일 돕기 등의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일들 외에 나의 욕심으로 아이가 힘겹고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무척 마음이 아프다.

시험이 끝난 후 딸과 옛날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사진

오늘 시험을 끝낸 아이는 친구와 마라탕을 먹고 와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그간 시험 준비로 긴장의 시간을 보냈을 아이를 오늘은 더 많이 안아줘야겠다. 한 지인이 딸아이가 1센티쯤 더 자라길 바라며 아이의 다리를 열심히 주무른다는데 나도 오늘은 사랑을 담뿍 담아 아이의 다리를 주물러 줘야겠다.


딸이 어렸을 적 쓴 시(?)를 발견하고는 같이 깔깔 웃으며 읽었다.


우리 딸 시험 보느라 수고했어.

앞으로도 귀엽고, 부드럽고 포근한 엄마가 되어볼게. 저런 시 또 써줄 거지?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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