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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Oct 26. 2023

루틴을 지키는 삶

"선생님, 독감 조심하셔야 해요."


1년 정도 수업을 같이 한 성인 학생 한분이 수업을 미루자며 연락을 해서 전했던 말이었다. 저 시기가 대략 10월 초였던 거 같다. "네~ 땡땡씨도 얼른 나으세요"라고 친절히 답글을 보냈지만 사실 독감에 걸려봤자 잠깐 아프고 말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나의 기고만장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란 듯이 그 '독감'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언제나 정신없는 삶이지만 10월은 조금 더 분주했다. 가르치는 학생들의 중간고사가 연달아 있었고, 이번 학기 대학원 과제와 시험대비는 유난히 힘들었다. 중간중간 끊임없는 개인 가정사도 끊이질 않았다. 심약한 마음을 기다렸던 듯 과제와 대학원 중간시험을 끝마치자마자 호되게 독감 증상이 밀고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이 말해주듯 감기 따윈 상관없는 건강한 체질이라 자부했지만 40대 중반이 가까워서는 일 년에 서너 번 그다음 해는 네다섯 번쯤 감기를 앓았다. 그럼에도 하루 이틀 심하게 앓고 나면 삼일 때쯤에는 밀려있는 일들에 가슴이 답답해져 얼른 박차고 일어나할 일들을 해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고열도 문제였고 두통도 문제였지만 그들이 심하게 온몸을 할퀴고 지나간 후에도 영 기운이 돌아오질 않았다. 조금 남아있던 루틴이나 정돈된 삶에의 의욕이 신기루처럼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하루종일 기운 없는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거나 눈만 껌뻑이며 누워 있었다. 유튜브도 티브이도 웹툰도 책도 그 어느 것도 재미있지 않았다. 세탁실에 가득한 빨래거리에도 눈이 가질 않았다. 그냥 가만히 누워 창밖을 보며 가끔 생각했다. 


"이제 나에게 온 삶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살아야겠구나. "


그렇게 일주일을 앓고 힘없이 흐릿하게 보이던 세상이 반짝하던 오늘 아침

친한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언니, 오건영은 루틴을 깨지 않기 위해서 약속을 잡지 않는데요. 언니도 언니의 삶을 중심에 두고 살아요."



잘 알고 있다. 삶의 내공을 만드는 건 결국 꾸준함의 힘이라는 것을.

얼마 전 김미경 강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30대에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원생이 200명이나 되었던 그녀는 매일 방해받을 일 없는 가장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학부모 한 분 한 분에게 진심을 다해 편지를 썼다고 했다. 편지를 계속 쓰다 보니 밑천이 떨어질 땐 책을 수십 권씩 읽어대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밑천이 쌓여 자신이 책을 쓰고 강연을 한 힘을 주었노라고 이야기했다. 



지금껏 나의 삶의 밑천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은 맞는 이야기이고 반은 잘못된 이야기이다. 삶에서 '사람'이라는 자산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네트워크를 찾아 헤매고 연대를 만든다. 연대라는 말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진다면 아줌마들의 동네모임을 생각해 보자. 혼자 있을 때보다 두세 명이 같이 있으면 목소리도 높아지고 배에도 힘이 빡 들어간다. 나는 그런 그들 속에서 같이 웃고 떠들며 힘을 얻도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까 고민할 때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또한 가장 힘들기도 했다. 나는 그런 인적 자산을 이용해 네트워크를 운영하거나 이를 자산으로 돈이 되거나 돈이 안된다 하더라도 공부나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갈 만큼의 내공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뭔가 항상 어중간하다는 말이 나에게 딱 들어맞았는데, 그런 어중간한 상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모양새로 살고 있었다. 


나의 단단함이나 내공이 없는 인간관계는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자산이 된다 하더라도 친분으로도 사업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크게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것을 깨달아가는 마지막 시점에서 나는 더욱 분주했고 더욱 힘겨웠으며 결국 호되게 아팠다. 


나의 내공은 이미 40 이전에 쌓여야 하는 것이기에 나는 이미 늦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마다 자신만의 시간대가 있으니 나에게도 나만의 시간대가 있으리라 믿는다. 남은 나의 40대는 나는 나의 루틴을 잡고 나만의 내공을 찾아가야겠다. 남은 40대의 시간만으로 모자라다면 기꺼이 50대에도 그렇게 바칠 수 있으리라. 60도, 70도 80도 그리고 90까지도 내가 살아내야 할 시간이기에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단단한 밑천을 한가득 쌓아가야지.


일주일 만에 동네 산책을 나섰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10월인데 많이 예뻐해주지도 못한 채 너무 많이 흘려보냈다. 파란 하늘 기분 좋은 바람 눈부신 햇살에 감사하며 내일도 산책을 해야겠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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