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사용자 자아의 아름다움을 행위의 아름다움과 연결시켜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주세요'라는 호소보다 훨씬 가치 있게 다가온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화장실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써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관계자들의 노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뼈 때리는 캠페인성 문구가 사용자들의 행위를 아름답게 바꿈으로써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사람이 머물다간 자리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반려동물이 지나간 자리도 아름다워야 한다.
최근 폭설과 한파로 반려견 '설이'와 제대로 된 산책을 하지 못했다. 날이 좀 풀리는가 싶어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설이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 좀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 영하권의 날씨라 지인이 선물해준 패딩을 설이에게 입혔다. 설이와 가족이 된 지 5년이 되었는데도 사실 강아지에게 옷을 입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산책을 하면서 설이가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고 옷을 입혀야겠다 생각했고, 옷을 입고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예전의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어쨌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천(川)을 따라 길게 조성된 산책로를 걸었다. 설이도 여기저기 냄새를 맡느라 바빠 보였다. 그러다 설이가 산책로 바로 옆 잔디에 다른 강아지의 변 쪽으로 가려하자 “지지~!!”를 외치며 하네스를 당겼다.
“누가 강아지 X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간 거야?”
아내와 나는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어라? 5미터도 못 갔는데 여기저기 배설물들이 눈에 보였다. 끔찍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약 1시간의 산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배설물을 보게 됐다.
'목줄은 반드시 하고 배변은 반드시 치워주세요'라는 현수막 속 문구가 무색해졌다.
왜 치우지 않을까?
눈 속에 배변을 하고 그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채 눈이 녹자 보였을 수도 있겠다. 강아지의 배변 모습을 견주가 미처 보지 못하고 그냥 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배설물들이 널려있었다. 몇 주전 산책 나왔을 때보다 그 흔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반려동물과 산책할 때 항상 배변 봉투를 챙기고 다녔으면 좋겠다
보는 사람이 있든 없든 내 강아지의 배변은 내가 반드시 치워야 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예의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도 이렇게나 불쾌한데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심지어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우리는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살고 있다. 관련 산업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게 형성되고 있다.
강아지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쇼핑몰도 많아졌다. 인간의 세상에 강아지가 조금씩 조금씩 발을 넓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보호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특히 보는 이에게 혐오감을 줄 수도 있는 배변은 더욱 그렇다. 어긋난 행동 하나로 천만 반려인이 욕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