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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Mar 08. 2021

배우는 데 돈 좀 아끼지 마

돈, 쓸 때 제대로 쓰자

“배우는 데 돈 좀 아끼려고 하지마”


탁구 레슨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 고민하는 나에게 아내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 지금껏 나는 나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다. 지난날 나는 돈 천원, 돈 만원이 아까워 벌벌 떨다 결국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때가 많았다. 결단력과 행동력을 두루 갖춘 아내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좀스러웠던 나의 지난날을 털어내려 가장 상위의 탁구 레슨 과정을 등록했다.




새로 이사 간 집의 내부 수리를 위해 한 달간 집을 떠나 외지 생활을 해야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한없이 짧게 느껴지는 한 달을 어디서 보낼까. 마음 같아서는 제주도나 남해, 강원도 고성처럼 드넓은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 분위기 좋은 곳에서 낭만의 한 달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내의 출퇴근을 위해 수도권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고맙게도 아내의 지인(이제는 나와도 인연을 쌓게된)이 마침 지낼 곳이 있다며 선뜻 한 달간 머무를 곳을 내어주었다. 공사하는 집과도 그리 멀지 않아 감사한 마음으로 한 달 살 짐을 싸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낯선 곳에서 한 달을 머무르며 뭔가 의미 있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아내와 나는 고민 끝에 다이어트와 건강을 목표로 잡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한 달간 운동과 음식 조절로 예전의 몸매로 돌아가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한 달간 단식원 같은 다이어트 캠프에 들어가 생활하자는 의견을 나눌 정도로 우리는 인생 몸무게를 연일 경신하고 있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삶은 달걀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새로운 곳의 풍경에 푹 빠졌다. 주변이 너무나도 고요한 우리 집과는 달리 이 곳은 상권이 잘 형성된 동네라 맛집도 많고 볼거리가 다양했다. 상가 반대편으로 가면 '물새공원', '산울림공원' 등 여러 공원도 즐비해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 저기 가볼까?”

창밖을 유심히 보던 아내가 말했다. 아내가 가리킨 곳은 바로 앞 상가 제일 위층에 자리한 '스피닝'이라는 문구가 크게 써붙여진 피트니스센터였다. 다이어트와 체중감량을 목표로 한 만큼 뭔가 해야 했기에 '스피닝' 문구를 보다가 상담이나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창밖을 살피다가 피트니스 센터 바로 아래층에 '탁구클럽'이 눈에 들어왔다. 재미있게 운동을 하며 살을 빼고 싶은 나는 피트니스 센터에 갔다가 탁구장도 가보자고 했다. 내겐 스피닝보다는 탁구가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내가 스피닝을 할 동안 나는 탁구를 치며 운동을 할 심산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걸어서 5분 거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고 아내는 상담을 마치자마자 일사천리로 한 달 등록을 마쳤다. 이어 찾은 탁구클럽. 탁구는 어릴 적부터 즐겨했지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레슨비를 훑어보는데 월 8회 기준으로 10분에 6만원, 15분에 9만원 그리고 20분에 11만원이었다. 탁구장 사용료는 한 달에 7만원이었다. 레슨을 받고는 싶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레슨 10분만 할까?” 넌지시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미간을 찌푸리며 “배우는 데 돈 좀 아끼지마. 이왕 배우는 거 제대로 배우자”라고 칼같이 답했다.


나는 나에게 돈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10만원, 지인 결혼 축의금 10만원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나에게 투자하는 돈 10만원은 왜 이렇게 아깝게 느껴지는지...


 대학시절 해외 배낭여행을 목표로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출발을 앞에 두고 문득 '이 돈이면 밥이 몇 그릇일까, 몇 번의 버스를 더 탈 수 있을 텐데' 하고 차마 돈을 쓰지 못했던 나다. 서른을 앞두고는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나와의 대화'를 꿈꾸며 일주일을 목표로 하여 홀로 야심 차게 여행길에 올랐지만 집 놔두고 밖에서 돈 주고 자는, 이른바 '숙박비'가 아깝다는 생각에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던 나다.


단호한 아내의 말에 바로 20분 레슨을 신청했다. 레슨을 받기 전, 잠시 시간이 있어 아내와 탁구를 쳤다. 몇 번 쳐보지 않은 아내의 탁구 실력이었지만 남다른 운동실력으로 곧잘 따라 쳤다. 이후 생전 처음 탁구 레슨을 받았다. 짜임새 있는 20분 레슨을 받은 후에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뭔지 모를 짜릿함이 온몸을 감쌌다.

 

“거봐~ 내 말 듣기를 잘했지? 다른 데서 돈 좀 아끼고 배우고 싶은 거는 배우면서 살자~”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내 사전에 도무지 찾을 수 없던 '결단력'이라는 단어가 아내에 의해 채워졌다.


앞으로 한 달간, 아내가 스피닝을 할 동안 나는 탁구 레슨을 받고, 아내의 운동이 끝나면 함께 탁구를 치며 땀 흘리기로 했다. 일취월장한 탁구 실력은 더하고, 내 몸에 불필요하게 붙어있던 살은 빼내야지.


아내와 함께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한 달이 낯설음에서 기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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