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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Apr 08. 2021

그 여자는 오빠를 좋아했어?

아내의 충격적인 돌직구

장모님이 선물로 주신 호텔 무료 이용권의 만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1박과 함께 저녁 만찬 그리고 다음 날 조식까지 포함된 매력적인 쿠폰이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호텔이 있었지만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값비싼 이용권을 연기처럼 날려버릴 수는 없는 법. 바쁜 아내가 겨우겨우 짬을 냈고, 아내와 나는 쿠폰 만기 이틀을 남겨두고 예약을 마쳤다.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선 우리는 이사와 인테리어 공사를 앞두고 있어 오전에는 가구를 보러 다녔고 체크인 시간에 맞춰 호텔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호텔방에서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뒤 저녁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으로 갔다.


이른 점심을 먹은 터라 육해공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음식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맛깔난 냄새가 오감을 자극했다. 창가 자리로 안내를 받고, 초밥과 양갈비를 비롯한 군침도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 자리에 앉았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투명한 창문에 비친 석양이 마치 우리를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듯했다.


“너무 좋다. 당신 아니었으면 이런 데 올 생각도 못했을 거야.” 아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랑 안 와봤어?”

“응? 응. 안 와봤어.”

“그동안 뭐하고 살았대? 전 여친들은 이런 오빠를 좋아하긴 했대?”

“응? 응... 그러게..”

아내의 묵직한 돌직구 멘트에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실 아내를 만나고 처음 경험한 것들이 꽤 많다. 놀이공원의 대관람차도 처음 타봤고, 한여름 더위를 짜릿하게 날려줄 웨이크보드도 아내의 권유로 처음 접했다. 고추냉이의 참맛을 알았고, 밥 위에 김을 올려 먹는 것이 그렇게나 맛있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사소한 것 하나 버리지 못해 쌓아두기만 했던 내게 아내는 쓰지 않는 것은 필요로 하는 이에게 주거나 비울 때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진리도 일깨워줬다. 아까운 마음에 뜯지도 않은 향수나 옷, 가방도 '아끼다 똥 된다'는 참된 가르침으로 과감한 언박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첫 해외여행, 첫 호텔 숙박, 첫 패밀리 레스토랑, 첫 이케아 가구 주문 및 설치도 모두 아내와 함께 이뤄낸 나의 소중한 경험들이다.


아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내를 만나기 전과 아내를 만난 이후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가진 상식선과 테두리 안에서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대로인데 왜 경험에서는 차이가 났을까?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식사 메뉴를 정할 때도 “뭐 먹을까?”가 아니라 “칼국수 먹을까? 김치찌개 먹을까?”로 선택의 폭을 좁히면서 의견을 유도했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과 몇 가지 메뉴를 가지고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아내를 만나기 전 내가 80~90% 주도했다면 아내를 만나고서는 아내가 80~90% 주도해 나간다. 아내의 의견에 내 의견을 덧붙여 실행하는 것이다. 아내가 주말에 속초에 가고 싶다고 하면 나는 속초에 가서 물회를 먹고 고성에 가서 통일전망대를 구경하고 막국수를 먹자고 살을 보탠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주말에 우리 어디 갈까?”라고 물어오면 내 대답은 “영화나 볼까?” 내지는 “가까운 공원에 갈까?”였던 것이다.


아내가 내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했고 주변을 보는 시야를 넓게 만들었다. 내가 해보지 않고 관심이 없던 것을 다른 이와 함께 할 수 없었는데, 아내는 먼저 다가와 내 손을 잡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다시 아내가 말한다.

“나중에 우연이라도 전 여친 만나게 되면 꼭 사과해. 미안했다고.”

카운터 펀치가 쑥 하고 들어왔다. 명치를 가격 당한 것처럼 순간 숨이 막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관리도 안됐다.


어쨌든 지나간 추억은 소중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아내에게 충실할 것이라고 가슴속으로 다짐했다.


훗날, 아내에게는 미안하다고 사과할 일이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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