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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Nov 20. 2020

32. 비이성적인 열등감

  영재는 비동시적 발달을 겪는다. 이전 글에서도 설명한 적 있지만, 다시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사회, 정서적 발달 속도가 지적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회적 능력이란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뜻하고, 정서적 능력은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뜻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능력을 학습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학업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과 성공까지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비동시적 발달을 경험하는 영재에게는 이런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영재 자신이 바라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생기는 자아비판, 건강하지 못한 완벽주의와 이에 이어지는 낮은 자아존중감, 부정적인 자아 개념, 부담감, 미성취, 과흥분성, 고립감 등 영재의 다양한 특성이 사회-정서적 어려움의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1)


  하지만, 영재가 겪는 사회-정서적 어려움 중 열등감은 대체로 크지 않다. 과학 및 발명 영재교육원의 영재 학생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열등감을 느끼는 학생은 약 6~7%, 이러한 이유와 함께 친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생은 13~1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 또한 초등 영재를 대상으로 고민과 상담 요구에 대해 분석한 연구에서도, 열등감은 완벽주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등 다른 항목보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나타났다. 2)




이상한 열등감


  하지만 나는 열등감이 심하다. 다만, 내가 느끼는 열등감은 조금 다른 종류의 열등감이었다. 일반적으로 영재들이 느끼는 열등감이 다른 영재에 대한 열등감이라면, 나의 열등감은 실체 없는 어떤 것, 혹은 천재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나 자신은 영재가 아닌 멍청이였고, 그런 내가 다니는 영재교육원도 큰 의미가 없었다. 나와 관심사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 또래로 가득한 것은 학교나 영재교육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이 나와 비슷한 영재아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멍청이로 여기며 언제나 더 높은 이해력과 더 많은 지식을 갈구했다. 더 높은 이해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러니까 더 높은 지능을 얻을 수 있다면 그에 비례해서 짧은 삶을 살더라도 더욱 값질 것이라고 느꼈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해력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좌절했고, 더 다양한 지식을 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비난했다. 이런 성격이 잘못된 완벽주의, 미성취, 우울증, 그리고 내가 가진 열등감의 원인인 것 같다.


 세상에는 엄청난 수의 천재들이 있다. (...) 그냥 적당히 상위 1%의 지능이라고 할 때, 누군가는 충분히 영리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1%는 굉장히 큰 숫자다. 한국의 5000만명 중 50만명이 1%다. 60억중, 6000만명이 1%다. 나와 비슷한,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만 모아도 영국 인구 정도는 나온다. (...) 이젠 모르겠다. 난 너무나 평범하게 태어났고, 대부분의, 아니 대부분을 넘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평범히 죽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2016년 7월


  나의 한계가 느껴질 때마다 답답하고 열등감을 느꼈지만, 특히 열등감을 강렬하게 느끼는 대표적인 순간은 어떤 천재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인도의 천재적인 수학자 라마누잔의 삶을 다룬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이다. 기저에 깔린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 천재적인 수학자를 초빙한 혁신적인 교수, 인도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영국 왕립 학회원이 되며 많은 업적을 남긴 수학자, 그리고 그 둘의 각종 장벽을 뛰어넘는 우정을 다룬 영화인데, 이런 특징에 집중하기엔 라마누잔의 천재성이 너무나 강한 감정을 남겼다.  


  이런 천재의 이야기는 내게 너무나 아팠다. 그런 대단한 일화를 듣고 있자면 나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나는 내 이상에 한참 모자란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무한대를 본 남자'를 시청하고 며칠간은 심란하고 불안한 마음에 잠을 설쳤을 정도였다. 당시 건강하지 못했던 심리적 상태가 당연히 많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상태가 많이 나아진 이후에도 나는 따라갈 수 없다고 느끼는 뛰어난 사람에게 종종 이런 열등감이 생기고는 한다. 과거에 이렇게 생겨난 열등감은 나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했고, 결국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했다. 





References

1) 류은주, 김정은, and 백성혜. "사회-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과학영재에 대한 고찰." 영재교육연구 21.3 (2011): 659-682.

2) 성희경, and 한기순. "영재의 고민과 상담요구에 대한 개념도 분석." 청소년학연구 18.9 (2011): 30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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