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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Nov 13. 2020

31. 내가 영재라고?

영재아에게 영재라고 알려주어야 할까?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관심 가지는 것들에는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기보다는 피곤하고 재미없는 일이었고, 내 나이 때에 맞는 수업은 지루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재교육원에 다녔고, 초등학교 때는 교육청 영재교육원에 매년 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나 자신을 영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영재도 무엇도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영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과 다르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차이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개인차로 여겼다. 유아기에는 나 자신을 평균 이하 혹은 최악의 수준이라고 하찮게 여겼고, 초등학교에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영재'라는 특징보다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으로 나를 정의했다. 부모님께서도 나의 IQ 등 지적 능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거나 내가 영재라는 사실을 특별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더구나 영재원에 다니면서도 학교에서 영재원에 지원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던 것은 물론, 영재원에서 받는 교육의 수준도 내게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영재원을 지원만 하면 합격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이전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한 임상심리학자 시오파생은 영재아가 본인이 영재임을 알지 못하는 경우, 타인과 다른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인식해 병리적인 문제를 겪게 되고 그 이후에야 자신이 영재임이 밝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잘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긴 시간 나를 영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나와 타인의 차이가 비정상이 아닌 개인차로 여겼다. 




영재인지 몰랐기 때문에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것과 내가 영재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의 총체적인 부작용은 사춘기가 지나고 조금씩 성숙해져 갈 무렵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학교를 그만두고 나온 후 내가 어울리는 사람은 전부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 친구들은 거의 다 영재였으며(영재원에 다녔던 친구도 있다) 천재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당연하게도 나 자신을 기준점으로 생각했고, 자신을 멍청하다 여겼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에게 나 정도의 이해력과 배경지식을 기본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나의 객관적인 지능 지수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이후 기존에 어울리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기준점을 수정하는데 적잖이 노력했다.


 내 IQ는 상위 1%가 넘어가는. 다중지능 검사에서도 백분위 99-99-97이 나오는.. 그런 지능이었다. 처음엔 이거 모든 사람한테 다 이렇게 주는거 아냐? 했었는데, 다중지능검사 찾아보니까 아닌 사람도 있더라. 지능은 상위 1%이내라고 보는게 맞을듯 싶은데, 난 내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다. 멍청하다. 정말 멍청하다! 이런게 상위 1%라고? 오히려 믿을수가 없다. 그렇다고 거기서 검사결과를 굳이 조작해서 알려줄 필요는 없었을텐데.

2016년 2월


 모든 남들을 나와 같다고, 혹은 나보다 뛰어나다고 여기지 말자. 나에겐 당연하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그런 사고의 과정이 남들에게는 아닐수 있다. 이해가 안되서 외워야 하고.. 뭐 그럴수 있다는 말이지. 이건 정말 중요한것 같다. 인간관계에서도.. 

2016년 3월


  나를 바탕으로 세운 기준점은 엄격한 편이었다. 내가 그랬고, 내게는 삶을 살아가며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1)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할 것, 2) 음악이나 악기 연주를 익히고 있을 것, 3) 언어를 공부하고 있을 것이라는 세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에게만 호기심을 느꼈다. 나의 사고 과정을 따라오지 못하거나 지식이 부족하면 크게 실망하기도 했고, 내가 지키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나의 '경계'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다. 지금에야 이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던 내가 오만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겨우 나조차도 하는' 기본적인 소양일 뿐이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사용했던 표현으로, 나를 정확히 꿰뚫었다고 느껴져 여전히 기억하는 표현이 있다. 이런 태도가 내 주변에 견고한 성을 쌓게 만들었고, 나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 벽을 넘어 들어오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자퇴했더라도 사람을 만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이런 높은 기준과 애초에 부족했던 사람에 대한 관심은 나를 수년간 혼자 지내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나는 감정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 이 표현 역시 상담사 선생님께서 사용한 표현인데, 대학교에 진학하기 몇 달 전의 만난 선생님께서는 나를 두고 '감정을 배우려는 로봇' 같다고 하셨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영재성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원인 중 중요한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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