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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Dec 17. 2020

34. 여전히 지루한 대학교

  고질병이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모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열심히 반복해서 되뇔 뿐이었다. 내가 신선함을 느끼고,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을 가르치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합격하고 나서는 대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기대했다. 내가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들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학부 연구생으로 교수님의 실험실에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대학교에 다닌 분이 계신다면, 여러분은 대학에 입학하며 어떤 기대를 했는가? 나의 기대는 오로지 학문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마침내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MT나 인간관계, 축제와 같은 것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기대하지도 참여하지도 않았다. 아싸라는 유행어가 자조적으로 쓰이는 시기였지만, 나는 부디 아싸가 되기를 바랐다.




실망스러운 강의와 회의감


  입학이 다가와서 보니, 이 학교의 커리큘럼 상 이과의 신입생은 졸업에 필수인 기본 과목을 수강해야 해서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없었다. 첫 학기는 초과 학점조차 이수할 수 없었고, 모든 강의가 이미 신청된 상태로 신입생에게 통보될 뿐이었다. 첫 학년의 강의는 평범했다. 영어, 글쓰기, 기초 생물학과 실험, 기초 화학과 실험... 문제라면, 이 과목들은 너무나 평범했다는 것이다. 강의 수준은 학생들의 평균에 맞추어져 있는 듯했다. 영어를 거의 못 하는 학생도, 외국에서 지내다 온 학생도 같은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 생물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도, 생물 II를 배우고 온 학생도 같은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었다. 수준별로 반을 나누는 제도도, 실력이 충분하다면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는 제도도 없었다. 


  하지만, 첫 학년의 첫 학기였던 나는 많은 기대와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로 가득 차 있었다. 수업 수준에 실망스러웠지만,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혹시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있다면 새로이 배우자는 마음으로 강의를 성실히 들었다. 아무런 부담이 없는 첫 학기일 것으로 생각하고, 4학년 대상의 전공과목을 강의하는 교수님께 부탁해 4학년 학생들과 그 강의를 같이 수강하기도 했다. 


  모르거나 궁금한 내용이 생기면 강의 내용을 벗어나더라도 교수님들께 여쭤보았다. 교수님들은 그런 나를 좋아했다. 영어를 강의해주시는 교수님은 내게 영문과로 올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시고, 방학 때는 점심을 사주시기도 했다. 세미나를 온 다른 대학의 교수님은 요즘 흔치 않은 학생이라고 하시며 이름을 물어보고 가시기도 했고, 전공 기초 교양을 강의하는 교수님께선 1학년이었던 나를 학부 연구생으로 데려가셨다. 강의가 실망스러웠던 나는 강의 바깥에서 최대한 다른 지식을 얻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랬던 나도 결국 시간이 흐르며 포기해버렸다. 전공 강의를 들을 학년이 되면서 실망감은 커져만 갔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듣는 강의의 수준이, 내가 이미 아는 것을 되풀이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졸업까지 60학점이 넘는 전공 강의를 들으며 내가 모르는 내용이 20%라도 넘었던 것은 단 세 과목뿐이었다. 그렇게 꿈꾸던 전공 강의보다 역사, 프랑스어, 통계를 가르치는 교양 강의가 더 어렵고 재밌을 지경이었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자괴감은 더욱 강해졌다. 학부 연구생 일이 바빠지며 매 시험 기간을 거칠수록 공부량이 줄어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수준까지 왔지만, 그럼에도 성적은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를 대충하더라도 5등 밖으로 밀려나는 강의는 정말 한 손에 꼽았다. A+로 가득 찬 성적표를 받아 들면 기쁨은 금방 사라지고, 이내 절망감이 찾아오고는 했다. '대체 이곳에서 나는 뭘 하는 거지?'



 

어떻게 버텼을까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는, 돈과 시간만 낭비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학교였다. 이전에 나를 면담해주셨던 교수님은 내가 대학교를 또 지겹다 여기고 자퇴해버릴까, 굉장히 걱정하고 계셨다. 어쨌든, 그런 주변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는 졸업에 필요한 모든 강의를 이수했다. 


  내가 학교에 남아있었던 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뿐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한 사람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학부 연구생으로서 연구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매년 천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내고 유일하게 등록금을 낸 값을 한다고 느낀 순간은 연구실에 있을 때뿐이었다. 내가 학교에 남은 이유는, 그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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