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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Jan 29. 2021

38. 그래도 살아가는 삶

마무리

  이 글은 길다면 길었던 <영재성의 병리>의 마지막입니다. 여러분께선 이 연재를 어떻게 봐주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각자 나름의 얻어가는 것, 그것이 새로운 시각이든 위안이든, 그런 것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연재의 마지막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스러웠는데,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소감, 변명과 함께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작하며

  저는 영재 사이에서 특출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 어른이 보기에 아이 중에서는 특출난 아이였나 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주변의 기대감을 그럭저럭 만족시켰지만, 저는 이내 혼자만의 세상으로 숨어들었고, 지독한 미성취와 우울함에 시달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왜 이렇게 되었고, 앞으로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끝없이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약의 도움으로 자신을 끝없이 잠식하던 우울과 불안을 떨친 뒤, 그 해답을 찾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명쾌한 답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며 잠시 탐구를 멈추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흐르고 대학교에서의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나니 다시 같은 질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다시 나간 사회에서 나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제게서 발견한 어떤 특출남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영재성이라는 특징을 탐구해보니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생각보다 많은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 만든 정서적인 발달장애와 함께 '나'를 설명할 커다란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원인을 정리하기 위해, 졸업 이후 변화를 겪기 전 과거를 청소하기 위해 지난날을 돌아보며 개인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영재의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게 문득 느껴졌습니다. 분명 한국에도 영재들이 있을 것이고, 이들의 고충은 여타 선진국보다 훨씬 심할 텐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제 경험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연재하며

  제 과거를 되짚으며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꼈고, 그저 덮어두었던 일들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중반, 잠시 상담을 받으며 상담사분께서 '졸업 전에 같이 그런 과거를 청소하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아마 그런 작업을 혼자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보다도 뜻깊은 작업이었습니다.


  영재성, 그리고 어떠한 발달상의 결여, 두 독특한 특징이 공존하는 (twice exceptional이라고 표현하덥니다) 사람의 자기 보고식 질적 연구를 생각하며 글을 작성했습니다. 더하여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지난날을 똑바로 보고자 더욱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영재의 특성과 동반하는 어려움을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설명해 보려는 시도였기 때문에 수많은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제외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사적인 이야기이기에 최대한 익명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너무 모호하게 표현되었고, 또 어떤 부분은 알고 싶지 않은 가정사까지 포함되었을 수 있겠습니다. 어디까지가 적절한 예시의 범주에 포함되는지, 그 경계를 구분 짓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연재하던 중간에 약 30개의 글을 묶어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응모했었습니다. 하지만 영재성은 워낙 극소수에게 해당하는 주제인 데다, 요즘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굳이 들추기보다 위안되는 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당연히 수상이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고 그런 예상은 딱 들어맞았네요. 물론 더 유려한 문체로 흥미롭고 따듯하게 글을 풀어나갔다면 결과가 다를 수 있었겠지만, 능력과 시간이 둘 다 부족해 이렇게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마무리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며 가진 목적은, 제 과거를 정리하고 혹시 누군가 같은 문제로 고민한다면 참고할 선례를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목적은 충분히, 넘치게 달성한 것 같습니다. 제 과거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답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몇몇 분들께서 제 브런치를 구독해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시는 등, 다른 분들께 공감이 되었다는 점도 만족스럽습니다. 게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제 글에 위안을 얻고 공감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 자체가 저 스스로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며 항상 바랐던 것은, 언젠가 심리학 혹은 영재교육의 전문가에게 제 글의 교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누군가 도움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제 나름 큰 노력을 들인 프로젝트인 만큼, 이대로 묻어두기보다 좀 더 이어나갈 방법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아마 희박한 확률이겠지만, 어떤 좋은 소식이 있다면 다시 브런치에 글을 남기게 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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