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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Dec 10. 2021

0. 연무 속에서

 비록 한국 미세먼지에 중국이 미치는 영향은 대중의 인식만큼 크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나는 회의적이다. 전체를 보면 그렇겠지만, 특정한 날을 보면 분명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철에는 미세먼지가 심해진다는 점은 모두들 피부로 느끼고 있다. 겨울이라기엔 따듯한 날,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의 덕을 본 대기질이 다시 매우 나빠지고는 한다. 요컨대, 포근한 연무다.


 나는 왜 돌아왔을까? 포근한 연무였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그렇고, 지금의 나도 그렇고, 아마 미래의 나도 그럴 것이다. 내가 걸어온 자취는 그곳을 떠나자마자, 이내 연무로 채워져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나에게 세상은 그렇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짙은 안개에 잡아먹히는 곳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걸어온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연무 속에서 나 자신을 잃고 넘어지고는 했다. 내가 이 연무 속에서 또 길을 잃고 헤매지 않으려면 나의 흔적을 남겨야만 한다. 그럼에도 포근한 것은 과거의 내가 어찌어찌 목적지와 같은 방향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고, 군데군데 등불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글을 써 이 순간을 남기는 것은 나의 그 무엇보다도 몸을 지탱할 지팡이이자 나를 잃지 않게 해주는 기억법이요, 과거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위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내가 다시 나의 여정에 호롱불을 걸어두는 작업을 한다면, 과거에 걸었던 길을 비추어본 곳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전 글들이 영재성이 야기한 부정적인 측면을 필터로 내 과거를 돌아보며 일종의 사례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번 글은 그보다는 더 넓고 다양한 주제로 삶을 비추어보고 싶다. 영재성 그 자체, 신경증 그 자체, 나의 생각 그 자체를 대상으로 과거를 반추하기도, 오늘을 기록하기도, 미래를 그려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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