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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Jan 28. 2023

일기를 썼더라면


https://naver.me/FKZrRhq6



2019년 8월 2일 자 중알일보 기사에는 '20대 초반부터 80대 후반까지' 64년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쓴 일기를 울산박물관에 기증한 김홍섭 할아버지의 사연이 실렸다.

농사를 잘 짓고 싶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김 할아버지의 일기 1962년 6월 29일 자에는 '멸치 10원, 공책 3원'이라는 기록이 적혀 있다.

기사를 읽고 '아, 나도 일기를 썼더라면'하고 떠오른 기억이 있다.


1988년, 나는 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고교 평준화로 배정받은 학교는 시내에서는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배정표를 받았을 때, 나와 같은 학교를 배정받은 친구는 눈물을 보였고 집에 가니 엄마가 "엥? 그런 학교가 있었냐?"라고 했다.


학교에 가려면 전주역 근처의 우리집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서 논밭 옆길로 퇴비 냄새를 맡으며 10분 가까이 걸어 들어가야 했다. 

스쿨버스를 타면 학교 후문 앞까지 바로 갈 수 있어서 대부분의 학생이 한 달치 요금을 미리 내고 스쿨버스를 이용했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집에서 늦게 출발하게 돼서 스쿨버스를 타지 못했다. 떠나는 스쿨버스의 꽁무니를 멀리서 바라보다가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119번 버스를 타면 지각은 하지 않을 터였다. 다행히 버스 승차권도 한 장 있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버스가 와서 나는 안도하며 버스에 탔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시간을 확인하고는 '됐다' 하고 생각했다. 이제 상산고 앞에서 우회전을 해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되었다.

아니 그런데 버스가 우회전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을 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살펴보니 내가 탄 버스는 119번이 아니라 118번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차벨을 눌렀다. 다음 정거장까지는 엄청나게 길었다.


이제 어떡하지?


건물도 하나 없는 뻥 뚫린 도로에 내린 나는 입이 바짝바짝 타는 것 같았다. 택시비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호주머니에는 달랑 500원짜리 주화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걷다 보니 '빈차' 표시가 유독 빛나는 택시가 다가왔다. 나는 충동적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뒷문을 열자 기사님이 "어서 오세요." 하셨고 나는 생각이란 걸 할 틈도 없이 "저, 제가 지금 500원밖에 없는데요."하고 말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 참나."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문을 도로 닫으려는데 기사님이 "아, 빨리 타요." 하시는 거였다. 

감사하고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기사님은 많이 늦은 건 아니냐며 말을 붙여 주셨다. 

학교 앞길에서 허둥거리며 걷고 있던 같은 반 친구까지 태우고 학교 정문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 


"저, 이거라도."

쭈뼛쭈뼛 500원을 내미는 내게 기사님은 "아니, 됐어요. 덕분에 좋은 일 한 번 했네." 하시며 웃으셨다.


어제처럼 생생하게 그려지는 장면이지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게 있다. 이때의 버스비와 택시비는 얼마였을까? 


일기를 썼더라면 정확히 기억할 수 있을 텐데.


돈도 없으면서 택시를 세운 당돌한 여고생에게 커다란 다정함을 건네 주신 아저씨는 그날 일을 기억하고 계실까? 연세가 꽤 되셨겠지? 하시는 일이 모두 수나롭고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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