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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Nov 01. 2020

첨벙, 풍덩

튀어 오름



 몇 달간 사촌 언니 집에서 지낼 때가 있었다. 전 세계를 덮은 전염병 때문에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이 된 내 사촌 조카들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촌 언니와 형부는 모두 맞벌이기 때문에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하고 할 일이 없던 내게 아이들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열흘 정도 봐주기로 했던 것이 전염병의 수준이 점점 심해지면서 한 달로 늘었고 결국 석 달 조금 넘게 머물렀다.

 사촌 언니 집 근처에는 강이 하나 있는데 그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닦여있다. 언니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언니와 형부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매일 같이 혼자 그곳을 산책했다. 낮 대부분을 아이들과 함께했으니 저녁은 혼자 있고 싶었다.


 나는 음량을 원래 높이고 듣지 않아서 이어폰을 꽂고 있어도 주변 소리가 다 들린다. 그런데 유독 산책을 하고 있으면 ‘첨-벙, 첨-벙’, ‘풍덩’하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처음에는 잘못들은 줄 알았는데 소리가 몇 번이고 반복되어 강을 유심히 살폈다. ‘첨벙’이나 ‘풍덩’은 물이 아니고서야 날 수가 없는 소리니. 강에서는 물고기가 튀어 오르고 있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아주 높게 튀었다. 산책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게 신기했는지 나와 같이 멈춰 서서 물 밖으로 몸을 쏘아대는 물고기를 구경했다. 하지만 신기한 것도 한두 번 봐야 신기한 것이지 매일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는 걸 보자니 도대체 저들이 바다에 사는 날치도 아니고 왜 저러나 싶었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에 검색 애플리케이션을 눌렀고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이유’를 검색했다.

 ‘괜히 검색했다.’ 이유를 알고서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사람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기생충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위로 튀어 올라 철퍼덕하고 물속으로 떨어지는 것은 몸에 붙은 것을 떼어내기 위함이라고. 상상치도 못한 이유였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꽤 많은 물고기가 물 밖으로 몸을 튕겨내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게 다른 것도 아니고 모두 기생충 따위를 몸에서 떨구기 위해서라니. 그게 고통받는 몸부림이었다니. 그 몸부림을 신기해하며 다른 사람들과 구경했다니.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이유를 알고서부터 산책을 할 때 노랫소리를 키웠다. ‘첨벙’하는 소리가 몸부림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 태연하게 들을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강에 신경을 두지 않는 것이었지만, 내 맘대로 되는 건 없었다. 한 곡이 끝나고 다음 노래로 넘어가는 그 짧은 간격에 물고기와 물의 표면에 세게 맞닿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곧장 기생충이 들러붙어 괴로워하는 물고기 모습을 상상했다. 내 의지로 하는 상상이 아니라, 소리에 반응하는 상상이었다.

 더부살이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야 비로소 물고기를 떠올리는 걸 멈출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강 대신 딱딱한 아스팔트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 후로 몇 달이 지난 요즘 귀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들린다. 물고기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내 두 발에서 나는 소리다. 물고기만 첨벙, 풍덩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그 소리를 낸다는 걸 알았다.




 내 첨벙거림은 물고기의 것과 달라서 격렬하게 몸을 어디론가 쏘아 올리는 게 아니다. 다만 걸을 뿐이다. 물고기처럼 벌레가 달라붙는 것은 내 마음이고 보이지는 않아도 아프기는 한 이 벌레를 떼 내기는 해야 하니까, 걷는다.

 내게 기생하는 것은 여러 가지다. 이를테면 내가 가진 나약함이라든지, 자격지심, 남들만큼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압박감, 갖가지의 부정적인 생각, 주변의 눈치 등은 좁쌀보다 작은 벌레들이 되어 내 마음에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는 그 날카로운 이빨로 마음을 뜯고 갉아먹는다. 이것들을 떼려고 진짜 몸부림을 쳤다가는 남들의 시선을 사기 십상이므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염없이 걷는 것으로 대신한다. 나라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부림이다. 그렇게 걷고 있으면 내 걸음마다 ‘첨-벙’하거나 ‘풍덩’하는 소리가 들린다.


 첨벙첨벙 소리를 내고 걸으면서 다른 이들도 내게는 들리지 않는 첨벙거림을 가졌겠다고 생각한다.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는 게 힘든 사람들은 나 말고도 너무 많다. 각자 마음에 붙은 벌레들을 매일같이 떼 내느라 매일 같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높이 튀어 오를 것이다. 그 모습들이 위태롭고 안쓰럽다.

 강에 사는 물고기들은 너무 높이 튀어 올랐다. 그 모습은 꼭 주변 수풀이나 산책로 한복판에 떨어질 것 같은 인상을 줬다. 그걸 보면서 ‘살려고 나왔다가 물속으로 못 들어가서 죽으면 어떡해.’ 걱정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붙은 기생충을 떼 내려고 너무 높이 튀어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어디론가 튕겨 나갈 것 같은 느낌. 물고기는 본능적으로 수직으로 튀어 오르며 첨벙거릴지 모르지만, 사람은 어느 방향으로 튀어 올라 떨어질지 알 수 없다. 튀어 오름의 끝이 ‘첨벙’ 일지 땅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일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고통에 너무 높이 튀어 오르지 않게 서로의 마음에 붙은 기생충을 좀 털어줬으면 한다. 너무 높지 않으면 방향이 좀 달라도 물이 아니라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 계속 첨벙, 풍덩 소리를 내며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Samara Doo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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