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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Dec 14. 2020

영화 <조제>

고요함을 품은 조제

※ 감상은 개인마다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올 초 친구가 내게 자신의 ‘인생 영화’라며 영화 한 편을 추천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일본의 영화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생 영화로 자리 잡은 꽤 유명한 영화라 제목을 알고 있었다. 원래 로맨스 영화를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볼 생각이 없었는데 그걸 알아챈 친구는 내게 말했다. “진짜, 딱 한 번만 봐봐. 이건 무조건 네가 좋아할 거야!” 도대체 영화에 얼마나 확신이 있으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싶어서 결국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다. 그리고 왜 친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극찬하는지 알게 됐다. 영화는 좋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좋았고 이런 사랑 이야기라면 몇 번이고 보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연신 ‘로맨스 싫어!’를 외치던 내게 ‘이런 사랑 이야기라면 몇 번이고 보겠다’라는 생각을 심어준 이 영화를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해서 ‘조제’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기에 호기심이 생겼고 관람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새로운 조제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원작의 조제는 소설 속 주인공에 몰입하기 위해 금발 가발까지 쓰고 소설을 읽는다. 또, 아플 법도 한데 아무렇지 않게 의자 위에서 아래로 몸을 던지고는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행동한다. 줄이자면 약간 괴짜 같고 당차다. 반면 ‘조제’에서 조제는 쓸쓸하고 고요하다. 읽은 책을 통해 본 여러 이야기와 경험을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 가뒀고 감정선도 잔잔하다. 영화 전반에서 조제가 감정을 크게 터뜨리는 장면은 한 번 정도였고 대체로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마 혼자였던 시간이 조제의 몸에 그대로 뱄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조제의 오래된 고요함과 쓸쓸함은 영화 전반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쩐지 조제의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했다.

영화를 시대와 우리나라에 맞게 잘 각색한 것도 좋았다. 원작의 조제는 유모차에 탔지만 ‘조제’의 조제는 이미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끝에는 스스로 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마 리메이크작에서도 유모차를 고집했다면 영화의 분위기나 시대적 모습으로나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석의 아르바이트를 평범한 카페 아르바이트로 설정한 것도 잘한 선택으로 보인다. 원작의 남자 주인공인 츠네오는 마작 도박장에서 일하는데 일본에서 이게 흔한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도박장 아르바이트는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평범한 아르바이트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영석이 한다는 설정은 영석을 평범한 대학생으로 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좋은 점을 말했으니 이제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던 것을 말해볼까 한다. 가장 아쉬웠던 건 원작의 중요한 메타포인 호랑이와 물고기의 비중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조제’ 개봉 소식을 듣고 ‘이 영화에서는 호랑이와 물고기라는 두 상징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까?’가 가장 큰 궁금증이었는데 제목에서 사라져서인지 호랑이와 물고기는 스치듯 등장했다. 둘 다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물고기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며 조제가 홀로 설 수 있음을 암시했고 이 부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호랑이는 이렇게 등장시킬 거라면 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원작에서 그렇듯 ‘조제’에서도 호랑이는 극복하고 싶은 두려움인 것 같았는데 그 등장이 뜬금없어서였는지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 오히려 호랑이의 등장과 이후 호랑이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가 영화의 흐름에서 튀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조제와 영석의 감정이 스크린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스크린 속에서 그들은 분명 사랑하고 슬퍼하는데 그 감정이 나에게 닿지 않았다. 두 배우가 연기를 못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영화의 흐름이 술술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두 주인공의 감정을 읽어내기 힘든 원인이 아닐까. 비유하자면 완결된 드라마를 보는데 중간, 중간 몇 편을 띄우고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큰 흐름은 이해하는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장면은 ‘이게 왜 갑자기 등장하는 거지?’와 같은 반응을 나오게 한다. 앞서 말한 호랑이의 등장이 그랬고 놀이동산과 수족관 장면이 그렇게 느껴졌다. 특히 호랑이와 수족관은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면 아마 더욱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느닷없는 장면의 등장은 두 인물의 감정선을 잘 잇지 못했다. 이 장면이 두 인물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이 서로에게 깊은 감정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그들의 슬픔이 내게는 ‘저렇게 힘들 이별인가?’라는 의문을 줬다.




‘조제’는 참 아쉬운 영화다. 영화 전반의 분위기라든지 조제라는 인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의 섬세한 감정들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었다. 잔잔하게 시작해서 그저 잔잔하게 끝나버린 영화.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좀 더 잘 짜였다면 꽤 괜찮은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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