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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Feb 09. 2021

책 『당신이라는 자랑』

사랑하면 자랑도 하는거지



공포와 미안함. 나는 얼마 전까지 엄마에게 이 두 감정을 함께 느꼈다. 작년 연말부터 유난히 바닥을 찍어버린 내 자존감 때문이다. 나는 취업 걱정으로 원래 낮은 자존감이 내 짧은 삶에서 가장 낮은 순간을 맞이했다. 떨어진 자존감은 엄마가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부추겼다. 내가 가족 중에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엄마라서 그 공포는 매우 크게 다가왔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평소와 같이 종종 나를 안아주고는 ‘사랑하는 딸’이라고 불렀다. 나는 엄마 품에 힘없이 안기며 ‘그 사랑을 주는 족족 받아먹고 컸으면서 고작 이 정도의 사람이 되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작 이 정도의 사람’ 밖에 안 돼서 미안했다. 엄마가 준 사랑에 비해 나는 너무 못나 보였고 ‘사랑하는 딸’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느꼈으니까.


요즘은 좀 괜찮아졌지만, 엄마 얼굴을 보면 여전히 두 감정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박근호 작가의 신작인 『당신이라는 자랑』이 더 눈에 들어왔다.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라는 그 단호하고 자상한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당신이라는 자랑』은 바로 이전에 나왔던 『미친 이별』과 확연히 분위기가 달랐다. 전작은 각 이야기가 강한 인상을 남기며 지나갔는데 이번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강렬하기보다는 부드럽게 흘렀다. 그래, 꼭 죽 같았다. 한참 앓고 난 사람에게 탈 나지 말라고 주는 흰죽. 슬픔이건 좌절이건 힘든 감정을 한 번 앓고 난 사람이나 앓는 중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이 책에서 건네는 위로 같은 것이 아닐까. 당신의 아픔을 알고 있다고, 그 아픔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눈을 맞추고 힘이 빠진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 주는 것 말이다. 작가는 『당신이라는 자랑』에서 그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아픈 사람을 위해 뭉근하게 죽을 쑤는 것처럼 천천히 부담스럽지 않게.


앞에서 내가 원했던 그 말은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다가왔다. 박근호 작가는 책 끄트머리에 스스로 무너질 것 같은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라고 말한다. 그 사실이 우리를 버티게 해줄 것이라고. 그는 자신에게 가장 아팠던 일들을 겪고서야 그걸 알게 됐고 이제는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도 살아간다고 했다. 내가 감히 작가가 겪었을 슬픔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어지는 ‘나는 누군가의 자랑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어쩌면 이 말을 하는 자상하고 단단한 작가의 태도와 그가 앞서 끊임없이 전하던 위로에 나는 어쩌면 정말 누군가의 자랑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 잡아서 가능한 게 아니었나 한다.




사랑과 자랑은 딱 한 줄 차이인데 우리는 사랑을 훨씬 많이 말한다. 사랑의 연장선에 자랑이 있다는 것은 잘 알지 모른 채로 말이다. 나도 이 책을 읽고 사랑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인데 이토록 쉽게 잊힌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이제 종종 떠올릴 수 있는 사실이 되겠다.

  

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 용기 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엄마한테 자랑이야?

응, 엄마는 우리 딸이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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