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라고 해도, 요행이라고 해도 깨어지지 않고도 부화되는 달걀만 같을까. 입 안에서 따뜻하게 녹아 없어지는 사탕만 같을까.
완전히 무너지고 깨어지고 으스러져 바닷물에 처박히지 않고, 가을 하늘 아래 볕 좋은 날 가지에 달린 탐스러운 사과 한 알처럼 벌레 먹은 자국 하나 없이, 새부리에 쪼아 먹힌 상처도 없이 백에 절반은 농도 낮은 눈물조차 없이 사랑이라는 결실을 맺는다지.
햇볕이 충분하고 토양이 기름지고 때마침 그해에는 재해도 비껴가고 넉넉히 비가 내린 덕에, 그런 내력에, 그런 운명에 베갯잇을 적셔보지도, 한강 다리 위에서 서성이지도 않았다지. 우리 중에 다행히 여럿은 그럴 것이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제각각이므로. 그러나 내가 선택한 사람이 한사코 재앙처럼 나를 겨낭하고 하필 나를 덮치고 마침내 나를 끌어내린다. 사랑이어라. 나의 사람이어라.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같은 찰나에 서로의 눈을 보고 어쩌면 둘 중 하나가 무너지더라도, 운이 나쁘게 둘 모두 주어진 삶을 미워하게 되더라도 서로의 눈 안에서 깊은 믿음으로 한 세계가 생겨나고 세워지는 것.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그것에 눈멀어 지나온 자기의 발자국을 지우며 파도가 다녀갔다는 흔적조차 남김없이 숱한 모래알에 티끌 하나 더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