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리실험 이야기
어린 시절 나의 아지트였던 아파트 옥상은 나의 만화방이기도 했다. 날씨가 화창한 날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 몇 권을 빌려, 볕이 잘 드는 곳에 누어 재미나게 읽던 추억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옥상에 올라가서 중2병 짓을 할 리는 만무하지만 즐겨 읽던 그 시절의 만화책 속 주인공에 대한 동경심은 어린 날과 다름없다. 만화 속 주인공들은 천방지축이고 나사 하나 빠진듯하며 싸움이나 운동에는 소질 하나 없는 소위 '루저'로 등장한다.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등 손이 오그라드는 대사를 연발하며 풋내기를 자처하는 그들은 주변의 반대와 조소 속에서도 자신의 꿈과 소신을 대중들에게 꿋꿋이 밝힌다. 근성과 긍지를 가지고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대를 꺾고 피나는 노력으로 더욱더 강력한 기술을 연마하며 성장한다. 또한 모든 주인공은 하나같이 똑같은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 이유는 굳은 신념과 자신보다 동료를 더욱 아끼는 마음, 큰 야망을 품고 있던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혼자였던 주인공 주변에는 그를 믿고 따르는 동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늘어간다.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굳은 신념을 지키며 꿈에 가까워지는 주인공을 보며 왜소한 아이는 용기를 많이 얻었다.
몇 년 전에 사두었던 간디 자서전을 최근이 돼서야 비로소 읽게 되었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인터넷 검색 중 우연찮게 서울대 선정 권장도서 100선에서 간디 자서전이 있음을 발견하고 책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사실 여러 번 읽기를 도전했었지만 여백이 없고 글씨 가득한 이 두꺼운 책에 늘 무너졌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독서량도 늘고 책 읽는데 흥미를 붙인 탓에 집중하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독파하는데 3주라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읽기 이전에 간디라는 사람이 위대한 위인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왜 위대한 인물인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다. 비폭력 불복종이라는 알 듯 말 듯 한 단어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릴 적 읽던 만화책 속 주인공의 등장처럼 그의 어린 시절은 볼품없었다. 자신의 종교적 관념에 어긋나는 육식과 도둑질 등 도덕적 타락과 정욕을 제어하지 못했으며 그가 변호사가 된 후에도 그는 소심하여 부리나케 재판장을 도망치는 용기 없는 사람이었다.
"밤새 혼이 났다. 무서운 가위가 나를 짓눌렀다. 잠이 올라고 하면 곧 산 염소가 뱃속에서 매매 우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나야 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육식은 의무라고 고쳐 생각을 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나는 일어섰으나 간이 콩알만 해지고 머리가 핑핑 돌아온 법정이 다 돌아가는 듯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중략) 나는 내 의뢰인이 그 사건에서 이겼는지 졌는지도 알 사이 없이 황급히 재판정은 떠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소함이 곧 무기라고 생각하여 말 한마디를 뱉을 때도 신중하게 말하는 습관을 지녔다. 그리고 끝없이 채식주의를 연구하고 음식의 절제를 통하여 브라마차리아(금욕주의)를 성공한다. 그의 의학적 사상은 현대를 사는 나에게는 아집으로 느껴질 만큼 지독하게 올곧았다. 죽음보다 간디는 자신의 신념과 맹세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고 여겼다. 그의 집안은 힌두교였지만 다른 종교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차별 없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세상 만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것들을 품으려 했다. 그에게 봉사는 당연한 것이었고 괄대를 받으면서도 기차를 탈 때면 늘 3등석을 고집하는, 사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간디는 자신을 낮추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맞서 싸우는 영웅이었다. 롤레트 법안에 대항하여 하르탈(영혼이 충격을 받아 일할 수 없는 상태) 운동을 제안했을 때 모든 인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노동을 거부하고, 그가 단식을 시작할 때면 대영제국의 윗선들은 벌벌 떤다. 인도의 전 국민들은 그를 '마하트마 간디'(위대한 영혼)라고 부르며 그를 따랐다.
1925년부터 4년 동안 인도 신문인 Navjivan에 쓰인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저널을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진리 탐구에 있어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서전이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업적은 진리를 향하여 떠났던 여행 중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고 그의 진정한 목적지는 자아실현이요 모크샤(영혼의 자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실험들이 정신적인 것이기에 그는 더욱 겸손하고 반성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서전을 집필했다. "진리를 찾아가는 자는 티끌보다도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에게 너무나도 엄격하고 빈틈을 주지 않았던 그는, 마치 연구자처럼 신중함과 정밀함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을 탐구했다. 이 책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는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그저 한 인간이 진리로 향하기 위해 내딛는 조용한 발자취였다. 마치 어릴 적 동경했던 만화 주인공의 실사화 같은 간디를 보며 말로 표현 못 할 큰 감명과 용기를 얻었다. 책 표지에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띤 간디가 나에게 말을 건네 오는 것 같았다. "너, 나의 동료가 돼라."라고.
삶의 목적은 올바르게 살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 마하트마 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