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
영화 김씨표류기를 보고
도리 도리. 인간의 도리. 인간의 도리에 대해 문득 생각하다 아픈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인간의 도리를 무어라 정의하는가.
우선 나는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살고 있는가에 대한 막연한 물음에 부정했다. 그 생각과 나의 대답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그것은 적확한 답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문제처럼 쉽게 풀리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도무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의 도리보다 더 큰 범주인 인간의 삶도 제대로 이해 못 한 나는 인간의 도리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턱이었다.
살인하지 않는 것,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 제 밥벌이를 하는 것, 회사나 학교에 지각하지 않는 것, 인생을 같이 할 친구 2명 정도를 사귀는 것,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 것, 슬픔과 즐거움을 아는 것,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것 등..
이 복잡하고 수 없이 많은 것들은 인간이 만든 도리일까. 신이 이 도리를 만들었다면 나는 불량품이다. 누가 만든 도리인지는 몰라도 이 굴레에서 우린 벗어나지 못한다. 이 지겹고 당연한 것들에게서 도망치지 못한다.
얼마 전 '김씨표류기'라는 영화를 봤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사회와 멀어져 버린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사회와 자신을 차단한 채로 살아가며 그들만의 행복을 찾는다. 행복은 인간의 자양분이다. 잉여인간이라도 그들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이뤄야 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갈 마지막 이유이자 당위이다.
그러나 사회는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잉여인간들, 김씨표류기의 두 주인공의 행복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해하고 비난한다. 그들을 다시 사회로 귀속시키려 한다. 인간의 도리를 다 하도록 인간의 도리를 강요한다. 과연 누가 잘못된 인간들인 걸까. 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수 일동안 답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법을 어겼다. 남자는 국유지에 무단으로 웅거 했고 여자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도용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도리어 주인공들에게 연민을 가진다.(물론 그렇지 않은 관객도 있을 수 있지만) 주인공들이 사회에 준 피해는 미비하다. 만약 그들이 처벌을 받는다면 벌금형 또는 보안처분정도 일 것이다. 물론 감독의 연출로 주인공들이 미화된 부분도 있지만 관객들은 저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범법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어느 정도는 감안하지 않을까. 관객들 대다수는 그들의 행복을 응원한다. 마음 한편에 불안과 걱정, 불확신을 가진 채로.
나도 행복해도 되는 걸까? 나 역시 이기적인 행복을 찾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이따금 찾아오는 행복에 쓴웃음 짓기도 한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주위 사람을 속인다. 마음속은 늘 흐리다. 그건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알량한 양심과 행복을 갈구하는 생존본능의 영원한 대립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