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똑같이 나눠줄 수 있다면
남편과 나의 첫 아이, 장애가 있어 예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첫째의 얼굴에는 남편과 시부모님, 시누형님까지 가족 모두의 얼굴이 담겨있었다. 눈썹은 나를 닮아 곱게 휘어졌고 눈동자는 사랑하는 남편을 닮아 크고 동그랗다. 첫째가 까르륵 깨르륵 웃으면 꽃잎 날리듯 고운 빛 가루가 내 눈앞에 흩날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우리에게 찾아오다니.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잊는 짧은 순간마다 아이의 존재 자체에 감격했다. 돌이 안 된 첫째를 두고 우리는 행복해하며 아빠를 닮아 이마가 넓고 엄마를 닮아 목소리가 크다며 서로의 단점을 놀려댔다.
첫째는 두 돌이 될 때까지 안정적으로 자라줬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째를 갖자.” 남편은 안 힘드냐며 여러 번 물었다. 아내와 딸에게 꽉 잡혀 사는 남편은 힘들었겠지만 나는 남편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이 참 좋았다. 남편을 닮거나 나를 닮거나 우리 가족의 누군가를 닮았을 우리의 아이를 또 만난다고 생각하니 그저 설레고 행복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둘째가 찾아왔다.
둘째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지역에 비장애 형제자매 양육지도법이란 교육이 있어 신청했다. 둘째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교육 시작 전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책상 위 유인물을 보는데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비장애 형제들은 부모보다 장애자녀와 훨씬 오래 살 것이고 부모가 죽고 난 후에도 장애인 형제자매에게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비장애 형제들은 부모들의 힘든 일상을 같이 나누게 될 것이고 비장애 형제만이 가지는 부끄러움, 원망, 또래 문제들, 성공에 대한 중압감들이 그들에게 큰 정신적 고통이 될 것이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 우리는 첫째를 위해, 첫째를 돌보아 주리라 기대하고 둘째를 낳지 않았다. 둘째에게 언니의 돌봄을 요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가족인 언니를 좋아해 준다면 좋긴 하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인 우리가 죽은 뒤엔 둘째가 첫째와 함께 세상에 남겨진다는 것을, 그 자체가 둘째에게 두려움과 고통이 되리라는 것까지는 헤아리지는 못했다.
성인이 되면 자립을 할 수 있을 만큼 첫째를 준비시켜 두어야 둘째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에게 가는 돈과 시간, 관심과 보살핌이 늘어났다. 하루는 24시간이고 부모의 체력과 돈은 유한하다. 둘째에게 가는 손길이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둘째가 한마디씩 말을 시작하고 쑥쑥 자라날 때 첫째의 본격적인 퇴행이 시작되었다. 고민 끝에 나는 퇴사했다. 첫째의 치료를 늘려서 내가 첫째를 업고 치료실을 다닐 때 둘째는 가정어린이집에 아침 일찍 가서 저녁 늦게 돌아와야 했다.
첫째에게 수면장애가 생겼다. 두 아이를 눕혀두고 나는 옆에 붙어 첫째를 꼭 잡고 재우느라 둘째는 많은 날을 엄마 등을 바라보며 잠들어야 했다. 둘째가 말을 잘하는 나이가 되자 “나도 손잡아줘.” 하며 엄마의 등을 더듬다가 손가락을 빨며 울다 잠들었다. 둘째 역시 애정 어린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이고 이런 상황을 이해하며 자신이 사랑받을 차례를 기다릴 수 없을 텐데 나는 첫째가 깊이 잠들 때까지 둘째에게 내 손을 내어줄 수가 없었다.
누구도 서글프지 않게 케이크 자르듯 애정을 딱 절반으로 나눠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작은 조각을 받아 든 둘째가 언니의 접시 위에 올려진 큼직한 조각을 보며 나는 엄마에게 덜 아픈 손가락이냐며 울게 하기는 싫었다. 그런데 반으로 똑같이 나눠줄 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둘 중 하나는 덜 받게 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애정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선배 부모가 비장애자녀를 위해 장애 형제 없이 부모를 독차지하고 노는 날을 만들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첫째에게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줄 수는 없겠지만 반나절 정도 부모의 애정을 독차지하게 해주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는 둘째에게 한 달에 한 번 ‘외동데이’를 선물해 주기로 했다.
첫째가 유치원 등원을 한 화요일,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둘째야. 오늘은 우리 셋이 엄마 아빠랑 같이 공원에 놀러 갈 거야" 둘째는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우리는 둘째의 손을 하나씩 잡고 함께 걷다가 “하나, 둘, 셋, 영차!” 하고 공중에 몇 번이고 들어 올려주었다. 공원에서 셋이 김밥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공원 안 가게에 들러 둘째가 먹고 싶어하는 과자와 음료수를 사주었다. 비눗방울을 불고 공놀이를 하다가 셋이 나란히 벤치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었다. 둘째가 많이 웃었다.
언니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어 집에 돌아가는데 둘째가 웃으며 "다음엔 언니도 같이 소풍 오자" 한다. 둘째의 마음이 벌써 너그러워진 모양이다.
그래. 너의 마음이 채워졌다면 되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이 너에게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첫째와 둘째 모두 우리 집에 찾아온 반갑고 귀한 아이들이다. 때에 따라 어느 한 명에게 쏟는 관심과 시간의 양이 기울어질 수는 있겠지만 적게 받는 한 명이 외로워지지 않도록 우리는 노력하기로 했다.
태어나 보니 장애인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 어리둥절할 둘째. 비장애 형제로 사는 부담을 모두 덜어줄 수는 없겠지만 가장 늦게 우리 가족에 합류한 둘째가 자연스럽게 언니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되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용기를 가진 둘째로 자라도록 지지할 것이다. 항상 성공적이지 않겠지만 우리의 작은 애씀이 녹록지 않을 인생을 사는 두 아이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이 글은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주최한 2021년 생활글&사진 공모전 '쉼표, 하나' 에서 장려상을 수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