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토록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있으니
지금까지 내가 알던 김려령 작가의 소설은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완득이’ 뿐이었다.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배우 서현진과 공유가 나온 드라마 ‘트렁크’를 재미있게 보고 나니-최근에 그렇게 새벽까지 쭉 본 드라마는 처음이었다-원작 소설도 읽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원작의 작가가 ‘완득이’를 쓴 사람이 아닌가. 그 당시에도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와 흥미로운 캐릭터에 매료되어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품 목록을 찾아보니 마찬가지로 영화화된 ‘우아한 거짓말’까지 그녀의 소설이었더랬다.)
그래서 이제 나의 뇌리에 김려령이라는 작가는 엄청나게 뛰어난 스토리텔러로 각인이 됐다. 특히 ‘트렁크’의 설정은 무척 매력적이다. 작가는 이미 1장 시작 지점부터 독자들에게 자세한 설정을 소개한다. 주인공 노인지 차장은 W&L이라는 회사의-말하자면 듀오나 가연이려나- 비밀 자회사인 'NM(New Marriage)‘에 소속되어 있다. 그녀는 VIP고객들에게 임대되는 배우자로 일하고 있으며, 다시 말해 와이프팀의 ’FW(Field Wife)‘로 현장근무를 하는 중이다.
드라마는 어느 날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의 비밀과 노인지, 한정원의 계약 결혼 중심으로 진행되는 반면, 원작 소설은 노인지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만큼 그녀의 삶과 주변 인물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다. 노인지의 과거부터 옆집 할머니의 사정, NM의 사람들, 친구 시정-그리고 혜영-과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노인지에게 집착하는 남자 엄태성과 그 후로 그가 어떻게 되어가는 지도. 책을 읽는 내내 드라마가 생각나서 애를 먹긴 했지만-계속 노인지가 서현진 얼굴로 떠오른다-드라마와는 다른 매력으로 소설 역시 좋았다.
원작 소설은 사랑의 모양과 삶의 형태를 훨씬 더 다양하게 드러낸다. 남성과 남성의 사랑, 여성과 여성의 사랑, 그러다 다시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짝사랑, 과거에 얽매인 사랑, 물질로 이어지는 사랑, 그리고 사랑이 없는 관계까지. 책 뒷표지에 쓰인 작가의 말을 덧붙인다.
"이런 사랑, 모두 꺼내어 볕에 널고 싶다.
누구라도 보송보송 잘 마른 사랑을 했으면 했다.
사랑 때문에 우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트렁크’라는 소설을 패기 있게 시작해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책을 읽는 내내 재미있어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게 내가 정말 추구히는 독서의 재미 아닐까. 다음엔 김려령 작가의 소설집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나를 놀래켜주실지 설레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