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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Feb 22. 2022

사랑의 또 다른 이름

2030 성장 에세이


  “받아들여보세요”. 최근에 듣고 있는 글쓰기 수업 첫 강의 때, 작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선생님께서는 무심코 던진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노트에 받아 적을 정도로 묵직하게 다가왔다. 요즘 젊음의 성장통을 겪으며, 이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강해서인지, 그게 참 쉽지 않다. 취업준비생 시절, 날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조직의 비효율적인 보고체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 술자리에서는 내 말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친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특히 사랑을 할 때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동안 했던 연애를 돌이켜보면 그렇다. 최근 읽은 <여행은 연애>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작가는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롤러코스터 식의 연애’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격하게 공감되는 대목이다. 연애초반 하트가 뿅뿅 나올 때, 취미, 습관, 세계관 등이 잘 맞는다고 느낄 때, 나는 천국의 달콤함을 맛본다. 반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툼이 일 때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댄다. 한번 불협화음이 일게 되면, 상대의 사소한 언행 하나에도 무슨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 지 집착한다. 그런 심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욱하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도대체 왜 나를 힘들게 하느냐고 쏘아붙인다.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 너도 아파봐야 해’와 같은 치졸한 태도가 나온다. 그러다 가까스로 화해하면, 언제 다퉜냐는 듯이 다시 달달한 관계를 이어간다. 이 패턴을 반복하다 서로가 끝내 지친다.


  이렇듯 파트너와 싸웠을 때, 종종 연애고수 친구에게 상담을 한다. 그는 이야기한다. “걔가 상처 줬다는 말은 이해는 가는데, 그렇게까지 화내고 아파할 필요가 있어?”, “넌 이상한 거에 하나 꽂히면 눈이 돌아가더라”, “10년동안 똑같아. 너 자신이 제일 힘들 것 같아.” 그리고는 말한다. “받아들여 봐”.


  더듬어보면, 왜 그 사소한 문제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싶다. 예를 들면, 난 유행보다는 내 멋과 취향에 따라 옷을 입는 스타일이다. 청청패션(청자켓-청바지)과 유행 지났다는 스키니진도 즐겨 찾는다. 파트너가 그런 내 패션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내 눈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위해서 요즘 스타일로도 입어보자” 라며 좋게 날 설득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해?”라며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이해하지 못한 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 뒤에 “아무튼 한국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라며 공격적으로 이야기해 또 다른 싸움을 만들었다. 그냥 ‘그녀가 날 예쁘게 꾸며주고 싶어하는구나’하고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걸. 미련하게도 이별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상대방은 그렇게 계속 날 받아들여 줬다는 것이다.


  <여행은 연애>에서 작가는 또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어, 라고 매 번 다짐하면서도 쉽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거랑 사랑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거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 또한 사랑이란 양식장에 빠져버린 후, 그 물이 썩어가는 줄을 몰랐다. 성공적인 양식을 위해서는 물을 매일같이 갈아줘야 함을, 그래야 물고기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물갈이는 ‘받아들임’이었다. 나 자신을 조금 뒤로 놓고,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했다. 그래야 신선한 물이 계속 순환될 수 있었다. 정수작업 없는 양식의 종말은 폐사 뿐이었고, 받아들임 없는 만남의 결말은 이별 뿐이었다.



  만남과 다툼, 그리고 헤어짐의 반복에서 고통을 겪던 무렵이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 깊은, 결혼 4년차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오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당연히 있어. 사람은 다 다르니까. 하지만 말이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 그냥 받아들이고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사랑인 것 같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양보, 배려, 이해, 그리고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김환기 - 판잣촌(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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