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뉴욕이었다

by 걸어가는



나 홀로 뉴욕 탐방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사촌동생이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샐러드 야채와 소스를 자체적으로 고르고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사 온 샐러드였다.


"언니, 맛있는 소스 넣었어. 야채는 다 먹지?"

"오, 고마워. 우왕. 신기해.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사는 이곳 뉴욕의 다수 음식점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은 비건을 포함, 여러 가지 입맛을 고려해 이것저것 원하는 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사촌동생이 사 온 샐러드의 출처도 그중 한 곳. 우리나라에도 있는 서브웨이 경우, 빵 종류부터 머리가 터지는데(그래서 맨날 똑같은 걸 주문하지.) 하나하나 취향을 체크하는 것은 각국 사람들의 입맛 대한 배려로 느껴졌다.

아무튼 나는 잘 먹는다. 샐러드를 마구마구 먹었다.


맥주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샐러드가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촌동생도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_살짝 픽션이 가미된 대화입니다


Q. 이름은?

A. 제시.


Q. 내가 골라온(은근 생색) 맥주 먹으니까 맛있어?

A. 응, 맛있어. 이제 좀 맥주의 맛을 알 것만 같아. 학생일 때는 돈이 없어서 펍에서 1달러 하는 버드와이저만 먹었어. 그래서 이제 버드와이저는 꼴도 보기 싫어. 코로나(맥주 이름)는 좀 안면이 있는 애니까 마트에서 보이면 사 먹곤 했어. 언니가 말해준 종류가 너무 많은데, 그중 내 취향을 알아가는 중이야. 나는 약간 쓴 것도 잘 먹는 것 같아.


Q. 응, 그런 것 같더라. 그거 IPA야. 우리 파티 언제 가?

A. 응, 갈 거야. 잠만 나 미국 드라마 ‘New Girl(뉴 걸)’ 감상 중이야. 이번 편만 끝나면 가자. 그리고 언니 샐러드 다 먹으면 가자. 근데 언니, 파티 재밌을까? 가지 말까?


Q. 그래도 2019년 마지막 날(2020년 마지막 날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유후)인데 가보지 뭐.

A. 그래, 아무래도 가봐야겠지. 캣 시터 친구의 삼촌이 아는 사람이 여는 파티야. 근데, 언니 나 아까 맥주 2병을 너무 빨리 마셔서 이미 취한 것 같아.



[6-7시간 후, 2020년 1월 1일 오전 03:00]





사촌동생은 파티에서 샴페인을 연이어 2잔을 마셨는데도 정신이 멀쩡해 보였다. 막차가 없었던 뉴욕 대중교통 덕에 우리는 무사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20년 1월 1일, 뉴욕의 새벽은 여타 대도시의 새벽과 다름없이 외로웠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 무단 횡단하다 지나가는 차에 치일 뻔한 사람(사촌동생이었다. 아찔했다), 휘청거리며 걷다가 친구들의 부축을 받는 사람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_2차 픽션이 가미된 대화


Q. 제시, 파티 어땠어?

A. 글쎄, 언니는 재밌었어? 언니가 재밌었으면 나는 그걸로 족해.


Q. 음, 나는 그게 궁금해. 우리 마지막 즈음에 재미교포 3세를 만나 이야기 나눴잖아.

A. 응, 그 엄마 아빠 둘 다 한국인이신데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 기억하지. 부러웠어. 나도 미국 시민권자 갖고 싶어. 미국 시민권자를 갖게 되면, 미국에서 뼈를 묻고 싶어.


Q. 미국이 그렇게 좋아?

A. 한국도 좋아. 근데 그만큼 미국이 더 좋아. 살고 싶어. 미치도록.






"1월 1일.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이곳 해운대로 모였습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나도 그중 하나였겠지. 해운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일출을 보고 있었겠지. 브루클린 어딘가. 힙합 소리가 흘러나오는 차가 지나가는 골목을 바라보며 나는 심심한 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래 같으면 일출을 보고 왔을(화면에서라도 봤을 텐데) 나는 왠지 한국의 1월 1일이 그리웠다. 청개구리인가. 한국에 있으면 한국이 지겹고, 외국에 있으면 왠지 한국이 그리운 건 우습기도 하다.


뉴욕으로 올 때 사촌동생의 집에 신세 지게 된 점도 있고, 또 한식 킬러인 사촌동생을 위해 한식 재료들을 꺼냈다. 떡국을 끓이기로 했다. 한식 마트에서 구입한 비비고 만두를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었다. 끝으로 계란을 풀어 넣었다. 나름 괜찮은 떡국이 되었다.


떡국을 호로록 먹으며 생각해 보았다. 뉴욕에서 새해를 보내게 되어, 덜 고통스러워졌다. 이번 해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 않은 20여 년의 인생 가운데 유일한 한 해. 연말 시상식도 보지 않은 내 2n 년 인생에서 유일무이한 해.


"아 연말에 진짜 바쁜데 왜.(왜 갑자기 퇴사야)"


날 두고 한 말이 아니다. 해고 통보받기 1주일 전, 1년 차인 선배가 자진 퇴사했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막판에 밥을 여러 번 같이 먹었던 이였다. 다만 선배들 중 유일하게 정을 붙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한 케이스여서 나이가 어리기도 했다.


"저는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어요."


단둘이 분식을 먹으며, 퇴사 이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그가 답했다. 그가 워킹홀리데이든 여행이든 계획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사람이었다.


몇몇 회사 사람들은 연말에 시상식 취재로 너무 바쁜데 비겁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냥 옆에서 연말 시상식 그렇게 힘들구나 하고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밤새더라도 열심히 해야겠네 싶었다. 수습의 패기였다.


아무튼 나는 뉴욕이었다. 뉴욕에서 연말과 동시에 새해를 맞이했다. 갑자기 퇴사하면 욕을 들을 만큼 바쁜 연말, 시상식을 보거나 취재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뉴욕이었다.






1월 1일부터 엄마가 뉴욕 여행에 합류했다.


"이모! 보고 싶었어, 이모!"


출국장에서 엄마가 빠져나왔다. 엄마를 마중하러 간 사촌동생은 강아지처럼 달려갔다. 나도 엄마가 와서 좋았지만, 사촌동생이 기뻐해서 더 좋았다.




엄마와 맞이하는 뉴욕의 첫 아침. 엄마는 가볍게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사과를 깍둑 썰어 요거트와 버무려 놓았고 나는 옆에서 팬에 식빵을 구웠다. 식빵의 보이지 않는 뒷면이 얼추 구워진 것 같다고 판단될 때 젓가락을 활용해 휘리릭 뒤집었다.


때때로 커피가 무지 마려울 때면, (엄마가 만든 표현이다. 우리 모녀는 커피를 사랑한다.) 패딩을 목까지 잠그고 근처 카페로 가 커피를 사 왔다. 제법 브루클린 주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촌동생과 뉴욕에서의 만남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커플 맨투맨을 기획했다. 버건디 색의 맨투맨의 왼쪽 심장 부근에는 나, 사촌동생, 엄마가 든 사진을 본뜬 일러스트가 그려있다. 그 밑에는 'In Newyork'라고 적혀 있었다. 디자이너 작가에게 맡긴 주문제작 상품이었다. 배송이 시작될 때 나는 깨달았다.


"맞다, 동생 꺼!"


친동생이 뉴욕에 안 간다고 치사하게 뺀 언니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뒤늦게 하나 더 만들었다.) 동일한 사진을 본뜬 일러스트와 'Hello from Seoul'이라고 쓰여 있는 버건디 색의 맨투맨. 커플 맨투맨 티를 입은 셋은 브루클린 브릿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모델님들, 여기 보세요!"


삼각대 하나 없어도 타이머 촬영 경력이 좀 되는 나는 아무 데나 카메라를 비스듬히 세워 놓았다. 타이머는 10초. 길지만, 나름 자세와 얼굴 표정도 다듬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사촌동생과 엄마는 30분 정도 지속되는 촬영에 툴툴대더라도 결과물을 보고 만족스러워했다.


"오늘 촬영비는 주시는 거죠?"

"아우, 힘들어 죽겠어."

"힘들지만 참으세요. 내일 또 촬영 있어요!"





브루클린 브릿지를 함께 걸으니 혼자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질랑 말랑하는 순간. 퇴근 시간이기도 했다. 브루클린 브릿지 아래로는 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해가 지는 주홍빛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예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관광객인 나의 시선에서만 그러해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퇴근하는데 차 막히면 짜증 나겠지?'


해가 지든 말든, 고된 일터를 벗어나 안락한 집으로 얼른 달려가고 싶은 차 안의 사람들은 정체된 찻길에 숨 막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가 지는 풍경을 담기 위해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저녁 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는 아직 브루클린 브릿지 초입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다리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제시, 배고프지 않니?"

"이모, 배고파요."

"......"

"그래, 우리 먹을 데도 찾아야 하니까 이쯤에서 돌아가자."

"좋아요."

"가?(모기만 한 소리로)"

"어디로 가야지?"

"일루 가면 돼요."


2대 1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