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미안해. 제시. 일부로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2019년 12월 30일 오전 10시, 윌리엄스버그에 자리한 모로코 식당. 사촌동생에게 빌고 또 빌었다.
사촌동생은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엄마에게 이 해프닝의 종결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내가 촬영을 알아보기 전, 영상에서 나는 핸드폰을 하고 있다. 반성의 기미가 없어 보였다.
전날 밤 나는 분명 사촌동생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그는 분명 들어와서 내 옆에 누웠다. 꿈이었나 보다. 현실은 그 반대였다. 나는 사촌동생의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했고 (내가 무음으로 설정해뒀으니까.) 나는 이 집의 하나밖에 없는 키(key)를 가지고 곤히 꿈나라로 빠져 들었다.
사촌동생은 전화기를 두드리다, 날씨가 추웠고 더 이상 밖에서 기다리기는 힘들 것 같아 집에 들어오기를 포기했다. 밖에서 오래 있다간 냉동 인간이 될 것만 같았다. 또 내가 연락을 받지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평소 집에 있었을 룸메이트들은 평일이라 집에 없었다. 그들은 뉴저지에 직장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주말에만 집으로 와서 머물렀다.
사촌동생은 결국 집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므로.
다행히 뉴욕 퀸즈 지구에 위치한 롱아일랜드시티(Long Island City)에 그의 친구 집이 있었고, 사촌동생은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나는 왕, 왕, 왕민폐녀였다. 사촌동생이 집으로 와야 하는데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몸서리치며 엄마에게 SOS했다.
"엄마, 나 완전 실수했어. 사촌동생네에서 이제 떠나야 할까 봐.."
엄마도 충격이 크신 듯했다. 집주인도 아닌 녀석이 집주인을 내보냈으니 이 어찌 황당한 일이 아닐까.
나도 충격이 컸다. 전날 밤 사촌동생이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잠에 푹 빠졌을까. 나는 화장실에 고이 놓여있던 아토피 등 피부병을 예방하는데 탁월한 비싼 유기농 비누를 속옷을 빨 때 쓰는 인간이었고, (사촌동생이 이 사실을 알곤 경악했다.) 사촌동생이 분명 "언니 나 친구랑 놀다가 좀 늦게 들어갈게. 문 열어줘"라고 했는데 이를 통째로 까먹고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놓고 잠에 든 인간이었다.
누가 보면 악의가 있는 것 같고, 근데 또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행동은 못됐다. 나는 이상한 인간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사촌동생은 엄마가 얼른 뉴욕으로 오기만을 더 손꼽아 기다렸다.
[부록] 열쇠 해프닝날 갔던 모로코 식당
블로그 덕후인 내가 올리지 않은 유일한 식당.
먹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나에게 음식점 포스팅이란 그 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허나 모로코 식당의 포스팅을 피한 이유는 너무 유명해질까 하는 우려 같은 게 있었다.
안 그래도 이 집을 찾는 현지인들이 많아 주말에 웨이팅은 기본인데 관광객까지 합해지면 큰일이 날 터였다. 주인장은 좋겠지만 나와 사촌동생, 엄마에게는 안 될 일이었다. (지금 시기가 슬프지만, 그래도 적절할 것 같아 올려본다.)
첫 방문 날(빌고 빌었던 날.) 나는 다른 브런치 식당에서 기본으로 먹을 수 있는 오트밀을 먹었다. 위에 사과 절임이 얹어 있어 맛있었다.
사촌동생은 우리나라에서는 에그인더헬로 알려진 메뉴를 먹었다. 토마토가 아주 진했다.
우리는 후무스(Hummus)를 주문해 나눠 먹었다. 두꺼운 두께의 피타 브레드를 후무스에 듬뿍 찍어 먹으면 없던 입맛도 다시 살아왔다. 물론, 입맛이 없다는 것 따위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병아리콩 등 다른 재료들을 섞은 후무스는 제법 양이 많았다. 사이드 메뉴로 나온 감자도 후무스에 찍어 맛있게 먹었다.
모로코 식당을 또 방문했던 날. 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나는 결코 똑같은 장소를 다시 방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맛집이든 어떤 집이든 한 번 방문한 이상 또 방문하지 않는다. 재방문해도 되는가에 대한 나의 레이더는 칼 같이 작동했다. 어떤 오차의 범위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철저했다. 딱히 갈 곳이 없을 때도 재방문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특히 여행지에서 머무는 시간은 한정적이므로 나의 재방문 여부 레이더는 훨씬 깐깐해졌다.
그런 내가 모로코 식당에 또 갔다. 그것도 단 3주라는 시간이 주어진 이곳 뉴욕에서.
세 번째로 방문한 날에는 가지를 활용한 디핑소스인 바바가누쉬, 병아리콩을 알맞게 튀긴 음식인 팔라펠도 주문했다. 새롭게 양고기 요리도 시켜봤는데 오븐에 구운 장조림 스타일의 양고기였다. 수프도 참 맛있었다.
왁자지껄 사람들이 많은데도 분위기가 좋았다. 적절한 조명, 안락한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모로코가 떠올라지는 붉은색 계열의 벽지도 한몫했다.
음식을 즐긴 후 마무리로 민트 찻잎이 잔뜩 들어간 따뜻한 차를 마셨다.
이 모로코 식당의 이름은 Cafe Mogador Williamsburg.
코로나만 풀리면 당장 짐 싸고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