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 말도 못 했어? 네가 아무 말도 못 한 게 생각나서 밤에 잠이 잘 안 오더라."
나를 해고시킨 대표 앞에서 아무 항변하지 못한 내가 자꾸 생각 나, 잠에 들지 못했다는 엄마는 몇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셨다. 대표 앞에서 나는 그저 그가 한 말을 소가 여물을 한 번, 두 번, 무한 번 되새김질하듯(어쩌면 믿기 힘든 일이라) 곱씹어 듣기만 했다.
"그러게. 엄마. 나는 그런 사회가 처음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나 봐."
한 때의 난 하고 싶은 말이면 다 하고 살았다. 대학교 팀 프로젝트에서는 조원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되었다. 누가 프리라이더를 하려고 하면, 그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는 게 나였다. 프리라이더란 사실 내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사회를 싫어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제삼자가 본 나는 정의에는 불타오르는 녀석이라고 평할 테였다. 정의로운 마음은 일절 없었지만, 어쩐지 나는 불합리적인 사회에는 맞서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완벽히 해내려고 했다. 내가 더 우위에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누군가가 내 시야에서 벗어난다면, 나는 그에게 달려가 너랑 나는 왜 이렇게 되면 안 되는지, 너는 무엇을 잘 못 했는지를 말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발효되지 않을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무관심. 내가 그걸 중요하게 여기냐 안 여기냐가 관건이었다. 그 대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경우, 나는 그냥 내버려 뒀다. 나는 때론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나는 당시 무관심했다. 나를 위하려고 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나는 일개의 직원이었고, 업무만 하면 되겠다고 파악했다. 그들이 영향력이 없다거나, 능력이 없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관심을 주관적인 잣대로 형성했다. 그런 무관심은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무관심한 나를 알아달라고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 뉴저지로 향하는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 안. 사촌동생과 나는 그날 뉴저지로 가는 버스 터미널을 찾아 헤맸다. 뉴저지행 버스표를 미리 구입했어야 했는데 몰랐다. 사촌동생은 힘들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표를 구입해 왔다.
우리가 가야했던 뉴저지의 집은 사촌동생의 친구네가 아니라 친구가 캣 시터를 하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그 집의 집주인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 고양이를 케어하는 사람은 사촌동생의 친구였다.
사촌동생은 당시 뉴욕에서 베이비시터를 하고 있었다. 사촌동생의 친구는 캣 시터였다. 우리는 우왕좌왕 출발하다 보니 당연히 늦어졌고, 캣 시터이자 사촌동생의 친구인 그가 있는 곳도 헤매다 겨우 찾았다. 그에게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문득 사촌동생이 내게 구체적으로 목적지를 알려줬더라면 이런 우왕좌왕함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대화를 나눠보니, 사촌동생은 내게 지명을 알려줬는데 내가 찾아보지 않은 것이었다.
사촌동생의 친구는 우리를 위해 파스타 요리를 해줬다. 수제 소시지와 뜨거운 물에 잠깐 데친 브로콜리를 오일에 볶은 이탈리아식 파스타 요리였다.
나는 사 온 맥주를 뜯었고, 준비해준 치즈와 햄 등 애피타이저를 먹으면서 요리를 기다리며, 둘의 대화에 꼈다. 주로 추임새나 맞장구 담당이었지만 나름의 수다였다.
파스타는 맛있었고 맥주와 함께 들고 간 케이크는 배불러서 먹지 못했다.
밤 12시가 넘어가는 시각, 우리는 막차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택시를 불렀다. 막차 시간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열심히 베이비시터도 하고, 일도 하는 사촌동생이 단순히 막차 시간을 놓쳐서 내야 하는 택시비는 나를 심통 나게 했다. 사촌동생에게 이 속상함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건 내가 무관심해서 심통이 나있었던 것이다.
늦어서 탈 수밖에 없는 택시와 택시비는 사촌동생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시터 해야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나의 심통함, 속상함이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케어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