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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Jul 12. 2022

펍 근무 첫날 소감

런던에서 맥주 따르기 4번째 이야기



나의 첫 근무 요일은 수요일이었다. 보통 수요일이라 함은 되게 평화로운 어느 평일로 인식되지 않은가. 천천히 배우고 열심히 익혀야지, 라는 마음과 아, 신난다 내가 펍에서 일한다니! 라는 들뜬 마음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날 들떴던 마음이 와장창창 깨졌다.


우선,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수요일은 서울 강남 및 광화문 일대의 스타벅스 매장을 뺨칠 만큼 매우 매우 매우 바쁜 날이었다. 나의 펍 근무에 대한 첫인상이 지옥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와, 여긴 진짜 지옥이다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패기롭게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결국 이날 자정,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었다.

내가 생각한 펍 근무는 이게 아니었는데.. 기계처럼 맥주를 따르다 집에 와서 보니 새로 받은 유니폼에 맥주 얼룩이 마구마구 튀어있는 게 아닌가. 한숨만 나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누가 나보고 일하라고 해서 일한 게 아니었다. 너 펍에서 일해, 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만든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만둘까, 빤스런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하루만 일해서 다 알 순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가 일에서 집중해야 하는 걸 정리해 봤다. 우선, 맥주를 제대로 따라야 한다. 그것부터 제대로 잘해야 한다. 근무 첫날이었던 수요일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한 번에 들어오는 약 10명이 한두 잔을 주문하는 게 아니라 최소 5~6잔씩을 주문한다. 맥주 한 잔조차 잘 따르지 못하고 질질 끌게 되면 일이 지연되고 만다. 뒷통수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의 시선을 받으며 진땀이 나기 시작하고, 옷에는 맥주 냄새가 가득 밴다. 가끔 맥주가 동 나면 남은 맥주가 분수처럼 터지곤 한다. 티셔츠 1장으로는 버틸 수 없다. 옷이 더러워질 것을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한다.

둘째, 주문을 잘 받아야 한다. 문제는 영어 회화를 제대로 해본지가 오래되었다. 영어 회화를 잘 알아듣기 위해 나만의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동료들과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바에서 요리조리 잘 움직이고, 손님들의 주문을 캐치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 위해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화합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목표를 마음속으로 깊이 새기고, 면접 전에 가졌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새겼다.

'난 할 수 있어'


근데 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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