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혔던 갱년기 더위가 슬슬 물러가는 중이다. 지난번 엄청 센 감기몸살과 싸우고 나더니 내 더위도 한풀 꺾인듯하다. 마치 내 세포가 심한 몸살 끝에 몹쓸 더위를 털어낸 듯한 느낌이다. 언제 올지도 갈지도 모르는 갱년기 더위와 내내 실랑이를 해서 내 몸이 많이 지쳐있었는지 감기몸살이 쉽게 물러나질 않았다. 일주일 정도 심하게 앓고 나니 슬슬 일도 할 수 있고 예전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단 한 가지 감기 후유증으로 냄새를 잠시 동안 맡지 못했다. 후각의 기능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남몰래 많은 걱정을 했다. 냄새 맡는 행복감을 이렇게 소중히 생각한 적이 없었다. 후각이 미약해지니 내 세포가 힘을 잃은 듯이 무기력해졌다. 비 온 뒤 촉촉한 가을 냄새, 젖은 낙엽의 텁텁한 냄새, 화창한 햇살 냄새, 남편이 따뜻하게 타주는 커피 냄새... 모든 것들이 그립고 아니 다시 느낄 수 없을까 봐 안절부절 불안해했다.
막상 냄새를 못 맡으니 편안할 거 같은 생활은 더 무미건조해졌다. 후각이 예민하니 남들보다 신경에 날이 서고 또 냄새로 인해 까다로움이 쉬발동하느라 불편했는데 냄새를 못 맡으니 이 모든 게 무뎌지는 게 너무 서글펐다. 아침에 일어나면 킁킁거리며 매일 내가 맡아오던 냄새를 찾았다. 깊게 들숨을 쉬어 보며 후각이 찾아가는 회로를 그려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린 끝에 서서히 냄새를 찾게 된 어느 날, 내방 가득한 익숙한 냄새를 긴 호흡에 천천히 맡아보았다. 조금조금, 살짝살짝 내가 기억하는 냄새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이불 냄새, 화장대 향수 냄새, 지난주 사놓은 트렌치코트의 새 옷 냄새, 창문 너머 느껴지는 가을밤 바람 냄새 등 후각의 자유선언에 편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