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해시 함수.”
비트코인을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개념이다. 마치 암호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복잡한 수학공식 같기도 하지만, 그 본질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해시 함수를 처음 접했을 때 그저 ‘수학적인 도구’쯤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었다. 해시 함수는 디지털 세상에서 신뢰를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도장’이고, ‘증명’이며, ‘노동의 기록’이다.
먼저, 함수라는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자.
수학에서 함수는 간단하게 말하면 입력과 출력의 관계다. 예를 들어, y = 3x + 2 라는 식이 있다면, x에 어떤 값을 넣느냐에 따라 y값이 결정된다. x가 1이면 y는 5가 된다. 이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y 값을 보고 x를 역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함수의 형태가 규칙적이라면 다음 결과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x가 1, 2, 3, 4, 5라면 y는 5, 8, 11, 14, 17이 되니, 다음 값은 20쯤 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시 함수는 이런 함수들과 전혀 다르다.
해시 함수는 일반적인 함수와는 달리, 특정한 기술적 목적을 위해 설계된 함수다. 검색 속도를 높이고, 데이터를 빠르게 찾고, 보안성을 높이며, 위조와 변조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특히 비트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시스템에서, 해시 함수는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해시 함수의 첫 번째 특징은 입력값의 크기에 상관없이 출력값의 크기가 항상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주 짧은 문장을 넣든, 책 한 권 전체를 넣든, 결과는 64자리의 고정된 16진수 문자열로 나온다(SHA-256 기준). 이 짧고 균일한 결괏값은 마치 거대한 데이터를 압축한 ‘지문’과도 같다.
두 번째는 비가역성, 즉 역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반 함수처럼 결괏값을 가지고 입력값을 거꾸로 계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해시 함수가 ‘단방향성’을 가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번 계산된 해시값은 다시 풀 수 없기에, 보안성이 매우 높다.
세 번째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입력값을 아주 조금만 바꾸더라도, 출력값은 완전히 뒤바뀐다. 예컨대 “hello”와 “hell0”(영문 ‘o’ 대신 숫자 0)만 비교해도 해시값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낸다. 입력값의 유사성이 출력값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눈덩이 효과(avalanch effect)’이며, 보안 측면에서 해시 함수가 강력한 이유다.
네 번째는 입력값이 동일하면 항상 동일한 출력값을 낸다는 점이다. 당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는 해시 함수가 데이터 무결성을 검증하는 데 활용되는 중요한 이유다. 파일이 전송 중 손상되었는지 확인하려면, 원본과 수신된 파일의 해시값을 비교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해시 함수는 충돌 회피성을 갖는다. 이는 서로 다른 두 입력값이 같은 해시값을 갖지 않도록 하는 성질이다. 이론적으로 충돌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해시 함수는 실제 어디에 사용될까?
비트코인을 예로 들어 보자.
생각해 보자. 사람이 주사위를 던져서 특정 숫자, 예컨대 1이 나올 때까지 계속 던진다고 하자. 반복적인 시도, 즉 노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컴퓨터로 랜덤 숫자를 뽑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겉으로는 랜덤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의도된 값’ 일 수도 있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결과가 진짜 무작위로 나온 값인지, 조작된 값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여기서 해시 함수가 개입한다. 해시 함수는 컴퓨터로도 쉽게 조작할 수 없는 ‘노동의 증거’를 남긴다. 예를 들어, 해시 함수의 출력값이 특정 조건(예: 0이 네 개 연속으로 시작하는 값)을 만족하도록 입력값을 찾는 건 매우 어렵다. 이 조건을 만족하려면 컴퓨터는 수없이 많은 입력값을 시도해야 한다. 마치 사람이 주사위를 수천 번 던져서 특정 패턴을 만들 듯이 말이다.
비트코인은 이 메커니즘을 채굴(mining)이라는 개념으로 적용한다. 특정한 해시값을 찾아내기 위해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나온 결괏값은 ‘노동’의 산물이며, 이를 검증하는 것은 아주 쉽다. 누군가 실제로 노력을 들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것은 신뢰를 구성하는 기술이며, 누가 조작하지 않았고, 실제 계산이 수행되었으며, 결과가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스템의 기둥이다. 비트코인을 이해하려면, 이 해시 함수의 원리와 역할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이 작은 함수 하나가 디지털 세상의 신뢰와 가치를 만든다. 나는 그것을 알고 나서야 비트코인의 기술이 얼마나 절묘하고 정교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