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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Mar 26. 2024

04 꾸준히 할 수 있는 힘

※ 2024년 3월 17일, 작업실103호 모임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을 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합성 갑상선 호르몬제인 ‘씬지로이드’를 반 알로 쪼개어 먹고, 다시 침대로 가 10분 정도 뒹군다.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이야’ 싶을 때까지 꼼지락거리며 누워있다가 다시금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간다. TV를 틀고 SBS로 채널을 옮긴다. 오랜 시간 ‘모닝와이드’를 틀어둔 탓에 어떤 코너가 언제 시작하는지 대충 알고 있으니 준비 시간을 가늠하기 좋다. 척척 두꺼운 매트를 깔고 매트에 드러누우며 말한다. “시리야, 유튜브에서 ‘눈뜨자마자 스트레칭 2’ 틀어줘” 다노 언니*의 목소리에 맞춰 굳은 몸을 깨운다. 기지개를 켜고, 척추를, 목과 어깨를, 골반을, 다리를 순서대로 풀면 조금씩 개운한 상태가 된다. 다시 척척 두꺼운 매트를 접어 놓고, 따뜻한 물을 맞으며 씻는다. 화장을 하다가 머리를 말리기 직전 외출복을 챙겨 입고 온 집안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작한다. 머리를 말리고는 창문을 닫고, 아침을 먹는다. 씬지로이드를 먹으면 1시간 뒤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쯤 되면 거의 50분 정도가 지나 있으니 적당하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액상 비타민 D를 한 방울 톡 떨어뜨려 삼키고 나가기 전까지 ‘모닝와이드’를 마저 본다. 출근은 대부분 차를 가지고 하지만, 좀 움직여야겠다 싶은 날엔 걷는다. 그렇게 직장인으로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집에 오면 저녁을 먹는다. 그리곤 유산균을 한 포 챙겨 먹고, 앉았다 누웠다 하며 유튜브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이 든다. 밤 11시, 침대로 가서 자자며 깨우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세수를 하고, 엽산 한 알과 마그네슘 한 알을 챙겨 먹고 잠에 든다.


요즘의 일상을 돌아보면 이렇다. 꾸준하게 지속해 온 것들 사이사이에 임산부로서 챙겨야 하는 이것저것이 끼어들어 자리를 차지한 모양새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행동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동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젠가 다노 언니가 말했다. 그땐 ‘인상적이군’ 생각만 하곤 실천할 생각을 안 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의 일상이 비슷한 플로우를 가지고 있다.


한때 ‘지속 가능한 일상’이 나만의 화두였던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내 일상이 잘 유지되기를 바랐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욕심을 낸 적도 있었고, 지치기도 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강박을 조금씩 버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지금껏 꾸준히 하는 것들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첫째는 ‘해야 하는 일’, 둘째는 ‘나다움을 만들어 준다고 여기는 일’을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


‘해야 하는 일’은 비교적 단순하다. 임신 초기에 한 혈액검사에서 갑상선 자극 호르몬 수치가 낮아 약을 먹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아 씬지로이드를 챙겨 먹는다. (일반인에겐 정상 수치이지만 임산부 기준으론 낮은 수치였다.) 아침 공복에 먹어야 하며, 약을 먹은 후 1시간 공복을 유지해야 하므로 눈을 뜨자마자 자연스레 일어나 정수기 앞으로 향하게 된다. 임산부에게 엽산은 꼭 필요한 영양제이니 이 또한 마찬가지. 이외에도 대표적으로 꾸준히 하는 일인 출근 역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나다움을 만들어 준다고 여기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의지가 좀 더 필요한 영역이다. 일상의 루틴 중엔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환기를 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하겠다. 스트레칭을 하지 않은 날엔 종일 찌뿌둥하고 어딘가 막혀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가능하면 10분씩 시간을 낸다. 밤사이 내뱉어진 이산화탄소가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상상이 들어 창문을 5분 동안 열어둔다. 걷기도 마찬가지. 다이어트 후 하루 평균 10,000보 이상을 걷자고 다짐하고 이를 지켜왔다. 임신 후엔 체력의 문제로 하루 평균 7,000보를 걷자고 다짐하고 있다. 글쓰기와 트레킹도 나의 일부라 생각하기 때문에 전처럼 자주 할 수는 없어도 일정한 주기로 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스스로 어떤 모습의 ‘나’를 좋아하는지를 살피는 데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와 가까워지기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계속해보는 것이 좋겠다.


*다노언니: 유튜브 다노 TV의 ‘제시’, 습관성형 플랫폼 ‘다노’ 대표 이지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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