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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Nov 01. 2024

우는 아기 달래는 법

차가 식어가는 동안, D+72


오늘도 아기는 제 몫의 울음을 울어냈다. 점심 무렵에는 낮잠에서 깨고 40분 정도를 쉬지 않고 울었다. 요며칠은 혼자서 낮잠을 거의 못 자는데, 나도 피로가 몰려와서 품에 안고 30분 정도를 같이 잔 후였다. 깊은 잠을 못 자니 일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안아주고, 도닥여주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도 보고, 쪽쪽이도 물려보았지만 울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 어제 보건소 간호사님께서 방문하여 보여주신 '우는 아기 달래는 법' 영상이 생각났다. 아기가 이유 없이 우는 시기가 있고, 그때는 가능한 선에서 안아주고 달래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울면 안전한 곳에 잠시 내려두고 다른 공간으로 나와 물을 한 잔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고 다시 달래기를 반복하라고. 그 말이 생각나 아기를 방 침대에 눕히고 잠시 거실로 나와 어느새 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결국 이유 없이 우는 아기를 달래는 법은 없는 거잖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기의 울음이 잦아들었고, 다시 품에 안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댔더니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지쳐서 배 위에 폭 누워 눈을 뜨고 조용히 숨만 쉬는 아기를 보니 애틋한 맘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나는 엄마 뱃속에 있었는데 지금은 뿅 하고 나와서 엄마 배 위에 있네? 진짜 신기하다 그치. 어떻게 엄마 뱃속에서 눈코입 손가락 발가락 다 생겨서 이렇게 나왔을까. 우리 집에 이렇게 작은 사람이 한 명 있다니. 크느라고 고생이 많아, 아가야."


떠오르는 생각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데 5분도 되지 않아 아기가 다시 울 준비를 했다. 내 말에 감동하고 웃어 보일 거란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다시 울음이 시작될 거란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어 조금 이르지만 분유를 먹이기로 했다. 아기가 분유를 먹는 동안 눈 맞춤을 해주려 노력하지만 긴 울음 끝에 분유를 먹는 아기는 지쳐서 눈물이 말라붙은 눈을 감고 있었고, 귀에서는 계속해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어보고, 목도 이쪽저쪽 스트레칭하고, 잠시 눈을 감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힘듦, 사랑스러움, 애틋함 같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매분매초 순서 없이 마음을 건드리니 기분도 컨디션도 오르락 내리락이다. 그래도 어쨌든 귀엽긴 하니까 견뎌진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아기를 키워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 시기가 가장 힘들다고, 그래도 금방 지나간다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물론 언제나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말에 매일매일 현실에 치여 지치다가, 하루하루 힘을 얻기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은 이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기 엄마와 산책을 하기로 했다. 지난 산책 때 만난 5개월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소개해주셨다. 낮잠이 힘든 이나와 달리 그 아기는 밤잠이 힘들다고 했다. 주변에서 육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어떤 아기든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산책을 하고, 그늘에 앉아 사소한 고민, 정보를 나누다 보니 1시간 40분이 훌쩍 지났다. 아기띠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자주는 덕분에 아기도 나도 안정을 찾았다. 물론 집에 오자마자 또 울었지만. 같은 시기를 지나는 사람과 '지금'을 이야기하니 마음에 꽤 많은 바람이 불어 들어 먼지를 날려준 기분이었다.


아기를 키우며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고쳐야 할지, 받아들여야 할지가 가장 큰 숙제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치거나 받아들이는 문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저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아기는 제 몫의 살을 찌우고, 나는 내 몫의 마음을 기울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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