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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Feb 15. 2023

'입고를 부탁드립니다'

첫 독립출판 후기


“기분이 어때?”     


글쎄, 지금 나는 어떤 기분이어야 할까. 원하던 것을 해냈으니 일단 무작정 기뻐야 하나. 오랜 노력이 담긴 결과물을 바라보며 뿌듯함이 밀려와야 하나. 생각지도 못했던 주변 사람들이 커다란 관심을 주어 벅차야 하나. 몇 차례 반복되는 재입고 연락에 슬쩍 미소를 지어야 하나.


이것이 내가 원했던 것이 맞나 걱정해야 하나. 그렇다면,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뭔지 곱씹어봐야 하나. 누군가 까만 글씨로 이루어진 나의 단면을 보고 오해할까 염려되어 잠 못 이루어야 하나. 이런 연락엔 이렇게 대처하는 게 적당했나, 계속 돌아보아야 하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평을 내어놓을까. 이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 사람이 더 많으면 어쩌지?     


-

책을 만들었다.     


꽤 오랜 시간 써 온 글을 추리고 엮어 손에 쏙 하고 잡히는 작은 책을 한 권 만들어 냈다.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는 이것이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비교적 단순한 일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써 놓은 글이 그래도 꽤 쌓였으니, 한데 모아 엮고 인쇄 버튼을 누르면 되겠지!     


그럴 리가. 고치고 고쳐도 고칠 곳이 눈에 들어왔고, 고민하고 고민해도 고민거리가 꼬리를 물었다. 잠을 줄이며 몇 주를 보냈다. 1년 9개월 동안 쓴 글을 책으로 엮는 데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짜잔- 하고 인쇄되어 집 앞에 배달된 200권의 책. 이제 됐다. 신이 나 언박싱 동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책을 펼쳐보니 인쇄가 잘못됐다. 인쇄소와 작은 다툼을 치르고, 생각하기만 해도 커다란 피로감이 몰려오는 에피소드를 하나 쌓았다. 결과적으로 약간의 손해를 보고 전면 재인쇄를 진행했고, 다시 200권의 책이 담긴 차가운 박스 세 개가 집에 멀뚱히 도착했다. 이제 진짜 됐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커다란 박스들이 방 한편을 떡 하니 차지하고 나니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감정이 몰려왔다. 일단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시 벽 속에 가두고, 단순노동을 해야 했다. 영하의 날씨를 뚫고 배달되어 온 차디찬 책이 잘 인쇄되었는지 한 권 한 권 살펴보고, 미리 구입해둔 책이 쏙 들어가는 크기의 OPP 비닐에 넣어 포장했다. 조금이라도 흠이 있거나 이상한 책은 걸러냈다. 누가 받아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깨끗한 책만 집어 들고 비닐에 차곡차곡 담았다. 새벽 1시까지 단순 작업을 반복하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요일이었음에도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반질거리는 비닐 안에 담겨 책상 위에서 곱게 열을 이루고 있는 책들이 200개의 얼굴이 되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저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한다. 일찌감치 노트북 앞에 앉아 인쇄를 기다리며 미리 작성해 둔 책 소개 글과 입고 희망 서점 리스트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많은 부수를 인쇄한 것도 아니었고, 우선은 방문해본 경험이 있는 책방에 입고가 되기를 바랐다. 다섯 개의 책방에 입고 메일을 보내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매주 목요일 함께 모여 글을 쓰는 글쓰기 모임에서도 연말을 맞아 책을 만들기로 했다. 그날은 그 책의 최종 편집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종일 집에 있기는 답답할 것 같아 함께 모여서 작업할 친구를 찾았다. S언니가 함께하자고 했다. 장소는 서로 이동이 편하도록 광나루역 인근으로 잡았다.     


‘입고를 부탁드립니다.’     


나갈 채비를 마칠 무렵, 오전에 메일을 보냈던 책방 중 한 곳에서 회신이 왔다. 책을 만들겠다고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전부터 좋아하는 책방이었고, 책을 만들기 위해 워크숍을 들었던 곳이었다. 꿈만 같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떤 책방이든 첫 입고는, 거리가 허락한다면 직접 인사드리며 하고 싶었다.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보았는데, 오늘이 아니면 일주일이나 지나야 직접 책을 가져다드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S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속 장소를 서울역 인근으로 옮겼다. 우왕좌왕. 정신없이 책을 챙겨 집을 나섰다.     


“있잖아, 책방에 딱 들어가서 첫인사는 어떻게 하지? 입고할 때는 선물을 사 가기보다는 판매하는 책을 사는 게 더 좋대. 나는 워크숍 동기가 만든 책을 사려고! 으악 떨려. 별거 아닐 거야 그치? 근데 진짜 감사하다. 이렇게 바로 입고 회신을 주시다니!”     


남편이 차로 책방까지 데려다준 덕분에 조수석에 앉아 쉼 없이 조잘거렸다. 아무리 조잘대도 긴장되는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자기, 너무 걱정 마. 별일 아닐 거야.”     


남편은 특유의 차분함으로 붕 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러는 사이 책방에 도착했다. 막상 책방에 들어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입고하러 왔음을 알리고, 책이 담긴 종이가방을 내밀고, 구매하려고 봐두었던 책을 결제한 후 어색한 공기를 박차고 나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여유롭게 책을 살피는 그런 그림은 상상 속에만 있었다. 잘하고 싶은 일 앞에서 호방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에겐 그저 ‘책 전달’이라는 미션을 달성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처음이니까. 처음이라는 말이 이럴 땐 꽤 의지가 된다.     


스마트스토어에 책이 올라오고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살포시 소식을 전했다. 엄마는 말없이 지인과 친척들에게 링크를 전달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책을 사주셨다. 갑작스레 재입고 연락이 와 입고 때보다 훨씬 더 우왕좌왕했다. 처음엔 밤 드라이브 겸 차를 타고 달려 책을 두고 왔고, 어떤 날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택배를 보내기엔 책이 상할까, 배송이 늦을까 걱정되어 자동차 퀵 서비스를 이용했다.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낸 전 직장 동료, 대학교 동기로부터 책을 받았다는 연락이 날아들었고, 밝은 성격의 사촌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아이고~ 작가님~"하며 웃었다. 좋았다. 그렇다고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정말이지 수많은 감정이 너울너울 파도처럼 몰려와 나를 집어삼켰다가, 시원하게 뭍으로 등을 떠밀어주었다가, 다시 망망대해로 끌고 나갔다가를 반복했다. 모든 일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이 또한 찰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파도에 휩쓸리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지만, 글을 계속해서 써야겠다는 다짐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

그리고 이제 다시 잔잔한 호숫가. 책방 여섯 곳에 입고를 마쳤고 방에는 다섯 권의 책이 남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니 책은 조금 더 인쇄할 생각이다. 천천히 조금씩 오래오래 사람들의 손에 들려 읽혔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제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좀 막막하다.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 많을 텐데, 지나온 이야기들로 하나의 책을 만들었으니 다시금 경험을 돌아보는 것이 새삼스럽다. 지금까지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글을 쓰고 싶다. 욕심은 앞서는데 방법은 모르겠다. 일단은 좀 더 내버려 두고 마음 가는 대로 써볼 생각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대로, 꾸준히 쓰는 것이 더 중요할 테니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표지판이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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