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이 : 서점 여행자 (1)

그림 그리는 언니들

by 일주일의 순이

2년 전 가을 절두산성지를 지나다 알게 된 서점이 있다. 합정동 한강공원으로 가는 골목길 끝 빌라 2층을 개조한 서점은 큰 창이 있어서 주변 하늘과 여러 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없어서 입구에서 쭈삣거리니 서점지기가 따뜻한 미소로 들어오라고 했다. 큰 키에 순한 미소를 가진 그녀는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도자기와 알록달록 접시 그리고 그림이 가득해서 갤러리 같은 서점이었다.


창가에 어반 스케치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서 구경을 했다.

" 그림이 멋지네요."

" 작가님 그림이 섬세하죠 이번에 우리 서점에서 드로잉 수업하시는데 관심 있으세요.?"

드로잉 수업이라는 말에 마음이 꽁닥꽁닥거렸다. 온라인 드로잉을 하며 그림 그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드디어 직접 작가님께 배우는 기회가 왔다. 서점지기에게 전화번호를 드리고 꼭 연락 달라고 했다.


수강생은 다섯 명이었다 왕언니들이었다. 서점수업에 가면 보통 젊은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곳에선 내가 막내였다. 첫날은 선긋기를 했다. 이리저리 선을 그리다가 건물 그림그림을 스케치했다.

"선생님 저는 느낌대로 그리고 싶은데요. 이렇게 해도 뭐라 마세요."

선생님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분은 첫날부터 내식대로 그리겠다고 선언했다.

"어반은 느낌이 중요하니 그렇게 하세요."

첫날부터 k언니는 나답게를 외치며 같은 듯 다른 그림을 그렸다.

다른 분들은 선하나하나 섬세하게 따라 그리는데 그녀는 마티스처럼 거침없이 쓰윽쓰윽 그렸다.

선생님은 언니의 기에 눌려 그냥 잘하셨어라고 대답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골목길, 집. 성당 그리고 계단을 그리면서 각자의 색이 드러났다.

항상 느낌대로를 외치는 마이웨이언니, 자로 잰 듯 똑같이 그리는 설계도언니. 힘들어요 외치지만 포기 않는 언니, 그리고 차분히 완성하는 성실언니. 그사이에서 나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따라가기 바빴다. 왕언니들은 두 시간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가끔 손주를 데리러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야 할 때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12월이 되니 그림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언니들은 프로 작가 같았다. 분명 초보반 수준이라고 했는데 이미 중급을 넘어섰다. 그녀들은 단톡방에 과제를 부지런히 올렸다. 그녀들의 열정이 놀라웠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진심인 그녀들을 보며 덩달아 나의 실력도 나아졌다. 아이들도 공부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듯 어른도 주위의 영향을 받는다. 그만둘까 하던 마음은 열심히 해야지로 바뀌었다. 야외 스케치도 나가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코로나 단계가 높아지면서 수업이 연기되었다. 좀 할만하다 싶었는데 아쉬웠다.


잠잠하던 단톡방에 새해인사가 오고 갔다. 언니들은 그동안 그린 그림을 올렸다. 부지런한 왕언니들! 나는 숙제도 겨우 했는데 새로운 그림자료까지 올리는 언니들 덕에 다시 그림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 내가 생각했던 할머니는 햇빛이 드는 의자에 앉아 담소나 나누는 모습이었는데 그림 그리는 언니들 덕에 배우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그림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그림 그리는 언니들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