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이 : 서점 여행자 (2)

십 년 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by 일주일의 순이

망원동 작은 서점. 글쓰기수업에 다섯 명이 모였다. 이번주 주제는 '영화와 노래에 얽힌 사연'이었다. 이 주제를 접한 순간 지금은 보지 못하지만 한 시절 내 곁에서 힘이 되어준 그 아이가 들려주던 노래가 글이 되었다.


지난 7월 가족과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갔다. 남원읍 위미리를 지나가게 되자 건축학개론에 나온 카페에 갔다. 서연의 집! 이층에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액자로 걸려 있다. 남녀 주인공이 옥상에서 이어폰을 끼고 들으며 '십 년 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서로에게 묻는다. 이곳을 좋아하는 것은 나에 똑같은 질문을 한 하얀 남자아이가 떠올라서이다.


K는 동문동아리 동기이다. 우리 동기는 남자 5명 여자 4명이었다. 신입생 환영회 이후 우리는 매주 금요일 5시 시계탑 앞에서 만났다. 자주 만나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식당에 가거나 노래방에 가면 K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기숙사 가는 길에 K 자취방이 있어서 모임이 끝나면 같이 갔다. 하얀 얼굴에 작은 키 장난기 많은 눈빛의 K는 남동생 같았다.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잘 쳐서 편했다. 모임 때마다 붙어 다니니 선배들도 사귀는 줄 착각했다. 우린 서로 친구라고 손사래를 쳤다.


힘들었던 첫 연애가 끝난 날 광안리 모래사장에 앉아 K랑 소주를 마셨다. 새우깡을 안주 삼아 한 병을 다 비웠다.

"나쁜 새끼 먼저 좋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온갖 욕지기가 올라왔다. K는 말없이 술을 따라 주었다.

"야 남자는 원래 그렇게 다 이기적이냐."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나에게 K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김동률 기억의 습작 '

노래는 일렁이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Y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나는 십 년 뒤에도 네 옆에 있어줄게. 변덕 심한 그런 놈은 잊어. 그런데 십 년 뒤에는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땐 비싼 안주로 술 마시자."

그 순간 K는 의젓해 보였고 다른 사람 같았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흠칫 놀란 듯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검은 바다를 보며 음악을 들었다.


그 뒤 우리가 사귀었냐면 그렇지는 않다. 왠지 부끄러운 생각에 그날밤 일은 서로 말하지 않았다. 남사친, 여사친. 우리는 그 언저리에 머물며 대학생활을 같이 했다. 서로 더 다가가면 왠지 오래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용기가 부족했다.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끔 만났지만 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결혼식날 K는 제일 먼저 와서 사진을 찍었다. 나의 이십 대를 같이 k는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남편은 남사친을 이해하지 못했다.


작년 가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K에게 전화가 왔다. 두 딸의 아버지가 된 그 아이는 기억 속 목소리 그대로였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위로했다. 여전히 따뜻했다. 힘든 순간마다 옆에 있어 주겠다더니 약속은 지키는 녀석이다. 가끔 라디오에서 김동률 노래가 나오면 광안리 해변에서 잡았던 뜨겁던 K 손의 온도가 느껴진다. 그날의 온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취중진담처럼 용기를 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린 서로에게 어설펐다. 사람마다 시절인연이 있다. 어떤 시절을 같이 한 사이 그리고 긴 이별을 하는 관계. 90년대 날것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시기를 같이 해 주었던 고마운 K에게 끝내 못했던 말을 전해본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

불안해할지도 몰라

하지만 꼭 오늘밤엔 해야 할 말이 있어

약한 모습 미안해도

술 김에 하는 말이라 생각하지는 마

언제나 네 앞에 서면 준비했었던 말도

왜 난 반대로 말해놓고

돌아서 후회하는지

이젠 고백할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 왔다고

이렇게 널 사랑해

어설픈 나의 말이 촌스럽고 못 미더워도

그냥 하는 말이 아냐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을 거야


< 김동률, 취중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