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비보호 좌회전(3)

사고의 과실과 책임

by 일주일의 순이

#서이초 #교권 #보호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기도 하는 사고와 사건에서 비보호 좌회전은 과실의 책임이 높다. 직진차량과 비보호좌회전 차량사이의 사고는 기본적으로 20:80의 과실책임에서 출발한다.

비보호 좌회전 이후 만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사건과 사고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3월 초반에 나는 많은 시간을 학교업무에 써야 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학교 교육활동 중에 민감한 이슈가 생길 수 있는업무 중 하나였다. 소위 평가 업무이다. 1년 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생 평가 활동과 관련된규정집을 만들고, 그 평가와 관련된 일련의 회의들을 소집하고 기록하는 일. 그 외에 정기고사와 수행평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평가 업무. 게다가 나는 중학교 2학년 담임에 수업이 21시간이었다. 거기에 4-6월 사이에는 특별보충 수업이 1주일에 2시간이 더해져 4.5.6월은 수업이 23시간이었다. 이 업무의 양을 들을 서울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후배가 놀랐다.

학기 초 나는 여러가지로 너무 버거웠다. 2016년 이후 40대 들어서 오랫만의 첫 출근이었고, 내가 예전처럼빠릿빠릿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업무까지 너무 많았다.


나는 2월말에 복직전 전교사 근무일에 출근을 했을 때, 3월 5일까지 2023학년도 평가규정집을 만들어야한다는 부장님의 지시를 받았다. 2월말 정식 복직전에 갈 출장에서 연수를 할테니 그 연수 내용과 작년 문서를 참고해서 만들라고 했다. 나는 학교 평가 규정집이 뭔지 잘 몰랐다.

작년 문서와 올해 새로운 규정집의 길라잡이 같은 교육청의 문서를 보고 올해의 새로운 규정집을 만들어야했다. 업무에대해 알고 난 지금와서 되돌아보면, 교육청에서 했던 연수는 크게 두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23학년도 평가 규정집의 새로운 개정 내용과 평가업무 진행의 전반적인 유의점. 하지만, 2월말 연수 당시 내 머릿속에는 내가 해야하는 일이무엇인지 구체적인 그림이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작년 업무 담당자나 부서 부장님이 어떻게 하는 것이 쉬운지 귀뜸을 조금이라도 해줬다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려주지 않았고, 그래서 또 물어보지 못했다. 작년 것을 보고 올해와 바뀐 것을 중심으로규정집을 만들라고 간단한 한마디를 들었다. 그 업무를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은 쉽게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작년 것이 어떤 내용인지도 몰라서 올해 바뀐 내용이 무엇인지 쉽게 비교해 내기 힘들었다. 나는 40페이지가 넘는 작년 규정집과 올해 교육청의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하나하나를 다 대조해보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올해의 규정집을 만들어냈다.


이 일들을 하려고 3월 4일, 5일에 혼자 출근을 했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도저히 집중할 만한 집중력도없었기에. 3월 6일에는 규정집에 대한 심의를

하는 회의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보완해서 규정집을 완성했다. 그리고 3월 7일 화요일에는 밤 9시 35분 정도즈음 학교컴퓨터를 끄고 퇴근을 했다. 3월 8일에 ‘평가 관련 규정집에 대한 안내’를 하는 교직원 연수를 진행해야 했다. 경력4년차부터 교직원 연수를 진행하던 경험은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 애써 초연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긴장되었다.


나는 내가 말을 너무 못하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왔고, 그런 의미에서 나이까지 많아진 저경력 교사로서 7년만의 교직원 연수 진행은 극도의 부담이었다. 7일 밤에는 아이가 새벽에 몇번을 깨는 바람에 잠도 설쳤다. 8일날 3시 40분에 교직원 회의가 잡혀 있었고, 그 전에 담임 반의 학급자치회 선거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주변 선생님들이 반장투표 선거용지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미리 반장선거 투표 용지를 만들어본적이 없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하니까 왠지 나도 해야할 것 같았다. 점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서둘러서 나도 만들기로 했다. 투표용지를 한글 파일에 만든 후에 출력했다. 그걸 자르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철로된 자를 대고 종이를 잘랐다. 마음이급해서 빨리 하려다 그만 커터 칼로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줄줄 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 아팠고 눈앞이 캄캄했다. 보건실에 갔다. 밴드를 붙여달라고 부탁드렸다. 밴드를 붙이고 교무실에 가서 반장 투표용지를 다 잘라서, 교실에 가려고 생각중이었다. 보건선생님께서 놀라시며, 응급실에 가서 꿰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손톱도 잘렸고, 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냥 두면 안된단다. 나는 벌벌 떨렸다. 반장 선거도 진행해야 하고, 교직원 연수도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났을 뿐이다. 교직원 연수는 자그마치 지난주부터 어제밤 야근까지 하면서 하던 일의 연장선상이었고, 어젯밤 연수자료도 야근하며 남아 준비했고, 집에가서도 연수에서 할말들을 적어가며 준비했던 일인데.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지.


“저 연수도 진행해야하고 할일이 많아서 응급실 못가요. 그냥 퇴근하고 가면 안되요?”

“네. 선생님 위험해요. 지혈이 안될수도 있고, 가셔서 파상풍 주사도 맞으셔야 해요. 빨리 가세요. 상처가 너무 깊고 피가너무 많이 나요. 어지럽지는 않아요? 팔 높히 올리고 가세요. 힘들면 택시타고요.”


순간 무서웠다. 내가 다친 것이 무서운게 아니라, 내가 교직원 연수를 진행하지 못한다고 부장님이 화를 내거나 할까봐. 내가 경험했던 학교는 그랬다. 내가 아프더라도 내가 해야할일을 못해내면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되는.


교무실에 왔다. 부장님께 사과를 우선 했다. “부장님 죄송한데요. 저 응급실 다녀올께요. 보건선생님이 당장가서 꿰매야한대요. 응급실 빨리 다녀와서 와서 연수 진행할께요.”

부담임 선생님께도 허리를 굽혀 사과드렸다. “제가 응급실에 가서 손을 꿰매야해서, 교실에 못들어가서 너무죄송합니다. 퇴근하고 가려고 했는데 보건 선생님께서 당장 가야한다고 하셔서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사과를 하고 눈치를보고, 운전을 하려고 차를 탔는데 눈물이 났다. 펑펑 울었다. 끄억끄억 거리면서.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모양일까. 그런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너무 많이 아팠다.


그렇게 응급실에 갔고, 의사 선생님은 내 손가락을 꿰맸다. 의사선생님이 내 손가락을 꿰맨 실은 손톱의 몇곳을 통과해있었다. 손톱의 일부가 잘렸고, 남은 손톱과 손가락 끝부분의 질린 살이 원래의 살들과 잘 붙을 수 있도록 여러 바늘이 손톱을 통과해 촘촘히 꿰매졌다. 상처가 깊다고했다. 엑스레이를 찍어서 손가락 상태를 확인했다. 파상풍 주사도 맞았다. 응급실에서 재촉하여 서둘러 손가락을 꿰맸다.


손가락의 통증으로 인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서둘러 학교로 돌아왔다. 반장선거와 같이 중요한 날인데. 교실에 들어가봐야하고 이따 교직원 연수도 진행해야 하니까. 아파서 차에서 울면서 되돌아 갔다. 급히 돌아오니, 학교에서 왜 돌와왔냐고 한다. 그냥 집에가서 쉬라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내가 느꼈던 분위기는 묘했다. 그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정확하게 가늠이 안됐다. 걱정인지. 놀란건지. 황당한건지. 그냥 내 마음이 차갑고 아팠고 불편했고… 그래서 그랬던 것이겠지 생각하면서도 그 알수 없는분위기를 느끼며 집에 갈 채비를해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며 동시에 이기적인 생각은. 이렇게 집에 보낼것이었으면, 응급실에 갈 때 처음부터 병원갔다 집에 가라고 말을 해주던가.였다.


학기 초에 수업 시수가 많으니 너무 많은 업무를 주지 않기를 속으로 바랬다. 하지만, 업무를 몰아주면서 관리자는 나에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보라고 말 했다. 너무 일이 많다고 말을 해봤자 돌아올 말은 뻔하다. 그렇다고 일이 줄지 않는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쉬운 업무나 편안한 업무를 맡은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냥, 업무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잘 하기 위해 긴장도 많이 했다. 3월초부터 주말에 연속적인 출근에 화요일 저녁 야근. 그리니 수요일에 평생 처음 커터칼로 손가락을 베는 사고까지 났겠지. 서툼과 나이듬의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통증으로인한 서러움. 황당하면서도 챙피했고 답답하고 화가 났고, 속상하고 아팠다.


손가락이 다친 사고 이후, 며칠은 진통제 없이 견딜수가 없었다. 샤워도 불편하고 생활의 모든 부분이 생각보다 불편했다. 그 순간의 섬뜻함은 오래 지속되었다. 업무중 일어난 일이지만, 그 어떤 보상은 없다. 5개월이지났지만, 여전히 다친 부분의 손가락에 감각은 없다. 올해 상반기에 출근 하는 내내 저경력자 및 복직자에게학교 업무 몰아주기 관행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자주, 실은 거의 매일 했다. 물론 이 사건은 내 과실이지만, 내 손가락을 다친 사건이 그런 관행과 100프로무관하다는 생각은 안한다. 그런 관행의 피해의 일종으로 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손가락이 다 나아지기도 전에. 나는 정말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학부모가 나에게 문자 메세지를 했는데, 내가 몇시간 동안 답이 없었다는 이유로 나에게 전화를 해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나에게 너무 말을 막하고 궁지로 몰면서 학교에 직접 찾아와서 나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오시겠다고 하니 그럼 전화로소리 지르지 마시고 학교로 직접 오셔서 얼굴 보고 이야기 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 학부모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대신 교육청에 나를 신고 했다. 나는 그냥 정신없이 일을 열심히하고 있었는데 신고를 당하다니. 머리가 멍했고, 손이 떨렸다.


나는 이 신고 받은 전날, 혼자서 학교에서 밤 9시 40분정도까지 평가 관련 업무를 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을 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느라 미처 전화기를 잘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학부모의 연락에 응대하는 것을즉각 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자신의 연락에 답이 없는 것을 가지고 담임의 자질을 운운했다.


그 다음날 나는 교권위원회를 여는 것이 어떻겠냐는 주변 선생님들의 권유로 학교 관리자들과 교권위원회를여는 담당자에게 운을 떼었다. 하지만, 관리자와 담당자는 그것을 원치 않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담당자는 내가 교사로서 서비스 정신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잘 응대했으면 이런 일은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교무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었다. 너무 억울했다. 업무도 수업도 많은데, 야근을 해도 일더미속인데 어떻게 학부모 연락에 즉각 응답까지 하라는 건지. 결국, 혼자 속상하고 화난 감정만 억누르고 넘어갔다.


며칠 동안 손이 떨렸고 잠이오지 않았다. 몇번 울기도 했다. 다행히 교실에서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는동안에는 그런 느낌이 사라졌고, 수업하는 동안은 잊을 수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즐거웠다. 그래서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고 버티면서 몇 주가 지났다.


나를 신고했던 학부모의 자녀와 관련된 여러가지 일들로 그 학부모와 계속 연락할 일이 생겨 그 학부모와 연락을 자주 주고 받았다. 거의 한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즈음, 나는 그 학부모에게 ‘소리 지르고 막말한 것과교육청에 신고한 것’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학부모는 처음에 내가 잘못해서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서 사과를 안하겠다고 했다.


47분간의 통화 끝에 그 학부모는 자신이 나를 신고하지 않았고, 자신의 가족이 나를 신고했으나 신고한 것에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리 지른 것에 대해서도 사과를 했다. 반복되는 갑론을박의 대화 끝에 그학부모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받았고, 약간은 괜찮아졌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내가 ‘혼자’서 학부모와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할 즈음 4월 말이 되었고, 나는 미국 대학원 어드미션 최종 수락기한을 마주했다. 고민고민 끝에 나는 대학원 어드미션을 수락했다. 복직 후 퇴근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쉰 날이 거의 없는 날들이 이어졌고, 두달이 지난 5월 초나 되어서 한숨 돌리던 시기. 나는 대학원 측에 입학 진행을 위한 서류를 제출했고, 그 서류들은 5월 말에 나에게 입학을 확약하는 문서로 되돌아 왔다. 그 문서를 가지고 6월에 비자를진행했고 비자를받았다. 그리고 나는 교육청에 유학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NO!였다. 나는 받기힘든 박사학위 어드미션을받고도, 교육청으로부터 유학휴직을 미승인 받았다.


올해 1월에서 8월까지를 살면서 유학휴직 미승인은 나에게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충격적이었다. 박사과정어드미션을 받기 위해 나는 거의 2년 가까이를 준비했고, 힘들고 지난한 과정들을 다 거치고 비자까지받았는데 교육청에서 유학휴직을 승인해주지 않은 것이다. 다른 지역 교육청 소속 교사들은 나와 같은 조건이면 유학휴직을 받을 수 있다. 또 많은 교사들이 석사학위나 어학원으로도 유학휴직을 허가받아서 가는데, 박사어드미션을 받은 나에게 유학휴직을 허락해주지 않은 교육청.


교육청에서 나의 유학휴직을 승인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나에게 박사과정 유학을 가지 말라는 처분과 같다. 부득이하게 유학이 가고 싶다면, 교육공무원직에서 물러나서 사직을 하라는 처분과도 같다. 박사유학은 최소한 6년인데, 교육청의 휴직 승인 없이 교육공무원은 휴직을 그렇게 길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청에미승인 사유에 대한 질의 면담을 가서 물었다. 면담을 안해주려는 것을 몇번을 전화하고 울고 매다려서 겨우받아낸 면담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변하지 않았고, 교육청은 내가 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침묵으로일관했다.


“교육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입니까? 이 교육청의 소속 교사이기 때문에 같은 지위의 교육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육청 교원들에 비해 받는 차별은 어떻게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교원의 권리는 누가 보장해줍니까?” 이런 내 질문에 대해 중등교육에 대한 총 책임을 맡고 계신 교육청부장님께서는 입을 다물고 아무말씀도 해주지 않으셨다. 다만, “가셔서 개인적으로 변호사분과 이야기 나누고 방법을 찾아보세요.”라고 말을 해주셨다.


서이초 사건이 터졌을 바로 그 시기. 나는 교육청으로부터 휴직 미승인을 받았다. 교사들이 슬퍼하고, 거리로나오던 그시기에 나도 혼자 울면서 교육청과 이런 일로 싸우고 있었다. 한 생명이 아깝게 사라진 것에 비교할만한 사건은 아니기에 내 상황에 대해 목소리내서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그런 큰 슬픈 사건 앞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어찌보면 내 일은 배부른 자의 투쟁일테니까. 그럼에도 당시에 휴직 미승인 처리로 나는 힘들었다.


7월 말. 휴직이 없었다면 20여년 경력이 되었을 나도 교육청이라는 거대 조직, 관리자들, 동료 교사들, 교사 노조 들이 다벽같이 느껴졌다. 휴직 미승인이후 며칠간 울먹이며 그 누구를 잡고 도움을 청하여도 다들 외면했다. 내가 느끼기에 그 누구도 내 편은 없었다. 그때 즈음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밥도 못먹었고, 잠도 잘못잤다. 서이초선생님 관련된 기사를 접할때는 더 많이 울었다. 서이초 선생님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내가 가늠할 수 없겠지만, 어떤 마음과 생각이 들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 젊음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고, 동시에 대한민국 교사들의 처지가 처량했다.


서이초 사건을 보고, 또 나의 휴직 미승인을 경험하면서, 교직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내가 올해 나이 많은 저경력자로 오랫만에 복직을 하며 겪었던 수많은 일들 뿐만 아니라 과거에 2-30대에 저경력자이면서 어린 여성으로서 겪었던 일들. 학교관리자들과 교육청, 그리고 동료 교사들도 개인인 교사가 어려움을 겪을때 도움을 주거나 지켜주기 위해 나서지 않는다. 심지어 교사노조 조차도. 그 누구도 개인인 교사를 보호해주거나 지켜주지 않는다. 올해 3월에서 7월말까지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교육기관의 교사로서 늘 느꼈던 것들이다. 개인으로서 교사는 약한 존재다. 교사가 상대해야하는 거대 기구와 조직의 힘이 너무 세고, 학부모의 영향력도 너무 커졌다. 교사의 지위와 권리, 혹은 권한에 대한 무력함이 느껴졌다.


교사로서 교직에 머문다는 것, 그 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낮은 교사로 교직에 머문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경험들을 지속적으로 경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사로서의 일을 해내고, 같은 교직 사회에 있으면서도 국가 교육기관이나 동료교사들 사이, 더 나아가 학부모들에게 약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교사로서의 지위를 갖고 만나는 사건과 사고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비보호 좌회전에서의 사고와 교직 사회에서의 사고는 본질적으로 달라서 1:1로 비유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비보호라는 말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처럼, 교사 ”개인“은 이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화순이 : 찐 P의 정리생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