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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Oct 20. 2020

결혼을 포기해버렸다

결혼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나는 안 하련다. 결혼.

스물여덟이 되다 보니 생각보다 주변에 결혼을 한 친구들이 많아졌다. 스물여덟이라는 나이가 유독 좀 특별한 것 같다. 나는 아직 내 몸 하나 챙기기 힘든데, 누구는 벌써 애가 셋이고, 누구는 벌써 이혼을 두 번했다. 어른과 어른이 사이의 나이라 모든 것이 애매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어릴 적부터 디즈니 만화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다.


공주와 왕자가 갖은 역경을 거친 후, 운명적으로 만나 새로운 왕국을 함께 만들어가는 그런 아름다운 것, 결혼. 결혼이란, 너와 내가 만나 새로운 하나가 되어 새 가족을 꾸리고 만드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서 결혼생활에 대해 읽고, 듣고 또 보다 보니 내가 아는 결혼과는 많이 다르더라.

그래서 어느 순간, 현실의 벽에 부딪힌 나는 과감히 결혼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은 ‘너의 가족과 내 가족이 한 가족으로 합쳐지는 것’이더라.


아, 조금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자면, ‘여자인 나의 가족이, 남자인 너의 가족 산하로 들어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시’가가 ‘처’ 가보다 자연스레 우위 선점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나라 결혼의 풍습이더라.


오죽하면 이러한 형상을 막고자 ‘반반 결혼’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더 웃긴 건 ‘반반 결혼’을 해도 여전히 대부분의 남성들은 대리 효도를 바라고, ‘며느리의 도리’를 아내들이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명절이 되면 특히나 이러한 형상들이 심해진다. 누구의 집을 먼저 가느냐, 누구의 집에 용돈을 얼마를 주냐, 음식은 누가 하냐 등…… 내가 꿈꾸던 결혼은 이런 모양새가 아니었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불합리하지만 일반적인 요구들이 너무나 많다. 사실 그래; 누구 집에 먼저 가면 어떻고, 음식을 누가 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결혼인데? 문제는 '그.날.하.루'가 아니라 평상시의 모습들에 있다. 이상하게 유독 우리나라 부부들의 생활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이건 필시 우리나라 결혼 문화가 이상해서 그런 것 같다. 이미 결혼의 시작 단계인 결혼식부터가, ‘나의 결혼식’이 아니라 ‘부모님의 결혼식’ 같다. 부모님이 그간 뿌려놓은 축의금을 걷기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결혼식 문화부터가 꼭 족쇄 같다.


뉴질랜드에 사는 내 가장 친한 친구 Pippa (피파)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를 오랜 시간 짝사랑해온 Jono(조노)라는 고등학교 동창과 7년 전에 결혼했다. Pippa는 학창 시절 엄청나게 방황을 했었고, Jono는 소문난 모범생이었다. Jono는 거진 5년간 그녀를 짝사랑했고 그녀의 방황을 묵묵히 기다렸다. 결국, 오랜 구애 끝에 둘은 결혼을 했고, 지금은 3살 배기 아들, Chester가 있다. 최근에는 작은 신도시에 집을 사서 세 가족이 알콩달콩 살고 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야외 교회에서 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나오는 결혼식처럼, 소수의 인원들로만 채워진 아름다운 하루. 비록 나는 한국에 있어 그 자리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결혼식 저런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고급 호텔에서, 하루에 몇천만 원씩 들여, 부모님이 뿌린 축의금을 걷는 허례허식 가득한 자리가 아니라 정말 나의 결혼을 축하해줄 수 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축하하고 축복하는 자리란 것을. 아직도 나는 가끔 내 친구의 SNS에서 내 친구의 결혼사진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냥 그 사진들 속의 내 친구가, 그 결혼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아니, 어쩌면 부러워서인지도 모른다.  


사실 여자들은 (이라고 쓰고 나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 남편이 오로지 나의 편이 되어주길. 남편의 (혹은 남자 친구의) 마음속 1순위가 나라는 온연한 확신.


그건 단지 명절에 누구 집에 먼저 가고, 음식을 누가 더 많이 하고, 그 하루 안에 보이지 않는 것 들이다.

사실 남편 (혹은 남자 친구)가 평소에 그러한 확신만 주었다면 우리 여자들은 분명 좋아서 명절 하루 정도, 그까짓 거 전부 남편 원하는 대로 맞춰줄 텐데..... 평소에 줄 수 있는 사소한 관심들과 사랑. 온전한 애정.


사실 우리가 결혼생활에서 바라는 것은 그거 하나일지도 모른다.


결혼은 디즈니 동화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란 것쯤 모두가 다 안다.


단지, 조금 더 행복하고 화목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너와 나의 앞날을 위해서는, ‘우리 두 사람의 가족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둘이 새 가족을 꾸려나가는’것이 될 수 없는 걸까?


두 사람이 약속한 사랑의 서약이 오로지 두 사람만을 위한 서약이었으면 좋겠다.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가정이 우선시가 되는 결혼문화가 빨리 우리나라에도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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