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적으로 애교도 많고 표현도 많은 사람인지라, 전 남자 친구와도 그러한 부분들로 인해 잦은 마찰이 있었다. 나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연인에게도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인데, 그는 “사랑해”라는 말에 굉장히 인색했다. 그래서인지 “표현”에 대해 자주 싸우곤 했다.
삼 년간 만나온 전 남자 친구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뚫다 못해 지하까지 내려갔을 때였다.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더니, 정말 나를 일컫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헌신짝이 된 기분이었다.
“똥차가 가고 벤츠가 온다”는 말이 있듯,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7살 차이의 오빠였는데, 굉장히 스마트하고, 똑 부러진 사람이었다. 내가 태어나 만난 남자들 중에 가장 배울 점이 많은 똑똑하고 성실했다. 만남의 초기, 나와 오빠는 역시 같은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 썸을 타던 중, 나는 나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반면, 오빠의 표현의 온도는 나에 비해 조금 미지근하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카톡을 주고받더라도 그는 단답형 답변이 많았다거나, 이전의 만났던 남자들처럼 썸의 단계가 불같이 뜨겁지 않았다. 그저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내가 표현하는 만큼 표현해주길 바랬는데 너무 많은걸 바란 걸까? 아니면 나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온갖 걱정 고민이 들었다.
“00아. 넌 너무 많은걸 바래.”라고 내 얘기를 들은 친한 언니가 얘기했다. 너무 직설적인 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언니는 나보다 10살이 많은 재미교포였는데, 언니는 정말 나를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어른의 연애란 그런 거야. 네가 그 사람 세상의 온 중심일 수 없는 거잖아. 시간을 내서 너한테 이렇게나 많이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노력을 많이 하는 거야. 일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그런데 어떻게 하루 종일 너한테만 신경을 써. 이게 어른의 연애야.”
‘어른의 연애’라. 아무리 아픈 이별을 겪게 되더라도, 다음날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떠 회사에 나가 일을 해야 하는 것. 학창 시절이나 20대 초반 때처럼 친구들과 허구한 날 모여 이별의 아픔을 공유할 수도 없이, 온전히 홀로 이별을 이겨내야 하는 것. 심지어는 새로운 만남까지 한정되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전의 사랑을 덮을 수 있는 기회들도 주는 것. 누군가에게 또 용기 내에 마음을 열고, 마음을 주고 가 전의 연애들로 인해서 나도 모르게 계속 조심스러워지는 것. 서로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아가면서, 자연히 가슴 떨림도 줄어들면서 익숙함과 편안함이 주로 이루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나의 평소 성격과는 1도 맞지 않았다.
그와의 “어른의 연애”는 뜨겁지 않았다.
대신 항상 잔잔했고, 또 따듯했다. 요란스러운 이벤트보다, 내가 예쁘다고 보내는 사진의 물건을 어떻게든 찾아 말없이 보내주던 사람이었다. “사랑해,” “네가 제일 예뻐”라는 감언이설을 하지 않는 대신에, 내가 자다가 혹여나 기침을 하면 이불로 똘똘 말아주던 사람. 이전의 연애들처럼 불같이 뜨겁지도, 밤새며 설레는 통화도, 어떠한 큰 이벤트도 없었다. 하지만 그와의 연애는 내게 있어 가장 따뜻한 연애였다. 그와 연애를 하며 느낀 것은, 굳이 말로 하는 표현들이 없어도 눈빛과 행동만으로도 사랑을 받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른의 연에’는 #럽스타그램을 굳이 하지 않아도, 카카오톡 프로필에 연인의 사진을 굳이 설정하지 않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애정 하며 건강한 연애를 이어 나간다. 결국, “어른의 연애”란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인걸 받아들이고, 이를 인정하고 서로 노력하는 것 같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받고 또 때로는 아무런 조건 없이 포용해주는 것.
"어른의 연애"란 처음부터 거창한 것보다 함께 만들면서 더욱 아름답고 위대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