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리 Nov 17. 2020

결혼 정보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이제 일 년밖에 안 남았어요" 니미 뭐 같은 얘기하고 앉아 있네

"Why Is it that there are so many single women in their thirties these days, Bridget?"

(브리짓, 요즘에 왜 이렇게 서른이 넘은 싱글 여자들이 많을까?"


"I don't know. I suppose it doesn't help that underneath our clothes our entire bodies are covered in scales."

(모르겠어요. 아마 우리가 우리 옷 아래에 비닐을 숨겨두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얼마 전,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XXX님이죠? 저희 이벤트 참여해주셔서 연락드렸어요"

나는 온라인 이벤트를 참여한 적이 없지만, 일단 나의 이름과 정보를 너무 정확히 알고 있어 일단 잠자코 들어보았다. 결혼 정보 업체 노 XX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회사 사무실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몇 살이세요?"

"스물여덟이요."

"에이 그럼 스물여덟이 아니죠~ 이제 곧 스물아홉이신 거잖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

곧 스물아홉인 거지, 아직은 스물여덟인데... 기분이 떨떠름해졌다.


"제가 전화를 잘 드렸네요~ 아시겠지만, 괜찮은 남자분들은 20대의 여자분들을 만나고 싶어 해서요~ XX님은 이제 일 년 남으신 거고, 저랑 같이 마지막 일 년 안에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에 골인해봐요!"

......... 진짜 니미 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다 진짜.

 

결혼정보업체에서 말하는 "좋은 남자, 괜찮은 남자"가 도대체 뭐인 것이며,

도대체 그들이 뭔데 "20대 여자만"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며,

전화를 건 이 사람은 도대체 뭔데 나를 오직 나이로만 판단하는 건가.


정말이지 기분이 너무 나빴다.


다들 정말 결혼을 하려고 이런 곳에 본인의 신상을 맡기고, 소개를 받고 하는 건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게 무슨 성차별적인 발언이며, 21세기에 이런 업체가 정말 서울시 강남구에 존재한다는 것에 정말이지 쇼킹했다. 도대체 어떤 변태적인 20대만 밝히는 남자들이 가입을 하는 거고, 정말 그런 변태들의 판타지를 충족해주는 돌아이 여자들이 가입을 해서 만남을 갖는다는 건가?

이런 업체가 21세기에 운영이 된다는 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좋은 남자가 도대체 어떤 남자인가요?"

"일단 능력이 있어아죠~ 안정적인 직업이나 전문직, 그런 분들은 다 20대 만나고 싶어 하거든요. XX님은 아슬아슬하시긴 한데, 그래도 일단 20대니까! 외모에는 자신이 있으세요?"

......... 진짜 찾아가서 불 한번 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순간 10초 정도 진지하게 고민한 것 같다.





여자가 가장 예쁠 때 결혼해야 한다고?

어릴 때 애를 낳아야 덜 힘들다고?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 25 지나면 그때부터 떨이가 되는 거라고? 결혼에도 "때"가 있는 거라고?


나는 이 얘기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나는 결혼에는 정년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예쁠 때, 남들이 해야 한다고 하니까, 나만 혼자 솔로로 남아있어서.. 고작 이런 이유들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을 때. 나의 여건이 가능할 때. 죽고 못 사는 누군가가 운명처럼 나타나, 이 사람이 아니면 내가 못 살 것 같을 때 해야 하는 거다. 그저 "괜찮은 남자"랑 하는 소꿉놀이 장난 같은 게 아닌데, 결혼정보 업체 회사들은 왜 저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걸까.


나이가 어떻든 간에 내가 100%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것이 결혼이다

(100%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어떻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결혼이라고 하더라...) 

좀 더 어릴 때 결혼한다고 행복한 것도, 늦게 결혼한다고 혹 결혼을 안 한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참고로 나는 그 날 해당 업체의 상담원에게 한마디 했다,

"스물여덟이건 서른다섯이건, 나이 하나로 판단해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 준다는 회사에는 믿음이 전혀 가지 않습니다"라고 나름 뿌듯하게 한마디 뱉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는 저런 전화 안 받았으면 좋겠다.




Women now have choices. They can be married, not be married.

Have a job, not have a job. Be married with children, unmarried with children.

이 시대의 여자들에겐 선택지가 있죠.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직업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을 수도, 결혼을 안 하고 아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지 난 혼자 살 팔자인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멋진 여자를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