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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선 Sep 26. 2020

자기 마음으로 남의 마음 헤아리지 않기

지나친 의심은 금물

  나는 한여름에는 보통 새벽 5시면 깨어난다. 일부러 아침형으로 바뀌려고  것은 아니고 나이 들면서 저절로 밖이 희부염 해지면 깨어나는 생활패턴으로 바뀌었다. 일어나면 곧장 집을 나서 집 부근의 공원으로 향한다. 걷기 운동을 한다. 새벽의 신선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며 절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일찍 일어나는 새들이 벌레를 잡아먹는 건지'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유난히 듣기 좋다. 풀잎에는 이슬이 영롱하고 나무들도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어 쾌적하다. "백만 송이 장미원"의 장미들은 알록달록 화사하게 나를 반겨준다. 그중에서도 아이보리가 나의 최애다.

  새벽부터 뛰기를 하는 아주머니들이나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이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이다. 나이 들면 아무래도 새벽잠이 적은 이유다. 걷다 보면 가끔씩 환자복 차림의 사람들이 나와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걷는 모습이 눈에 띈다. 공원 인근에 있는 정형 병원의 입원환자들이 재활치료를 할 겸 장시간 병실에만 갇혀있던 답답함을 날려 보내려는 생각인 것인지. 기운 없거나 거동 불편한 환자들을 보고  있으면 항상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건강은 일상의 좋은 습관으로 건강할 때 스스로 지켜내야지"였다.
   그날나는 활기차게 아침을 여는 중이었다. 한여름이라 나무 그늘 밑이라도 움직이면 땀에 흠뻑 젖는다. 맞은편에서 환자복을 입고 걸어오는 여성이 보였다. 오른팔을 심하게 상했는지 골절인지 깁스를 하고 있었다. 재질도 좀 두꺼워 보이는 환자복이 더워 보였다.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갑자기 옆으로 지나가다 말고 멈춰 서며 말을 건네 왔다. 목소리가 낮아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질 않는다. 난 그 자리에 못 박은 듯 서서 의아하게 쳐다만 봤다. 겨릅대같이 바싹 말랐다는 표현이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한다 싶었다. 온몸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너무 수척해 흠칫 놀랐다. 푹 꺼진 눈이 파르르 떨린다. 여인이 힘겹게 겨우 하는 말이  

  "저기요. 죄송한데 이팔 좀 걷어주시겠어요?" 

  기운이 없는 데다 마스크까지 끼고 말을 하니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다. 순간 내 맘은 기겁함과 동시에 철렁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워낙 겁쟁이에 소심하고 예민한 나인지라.

  "아~~~ 이거 뭐지 지? 왜 갑자기 지나가던 사람이 이상한 부탁을? "  

  어정쩡해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며 여인네가 힘겹게 부연설명을 한다.

  "제가요. 이 오른팔을 수술해서 불편해요. 너무 더워서 팔을 걷어올리고 싶은데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너무 힘겨운 목소리가 듣고 있는 사람마저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왜소한 몸이 바람만 불어도 훅 날아갈 것만 같다. 기운 없고 가여웠다. 에너지가 고갈됐는지 생명의 활력이 너무 부족하다. 순간 나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과 소름 끼침에 몸서리를 쳤지만 이내 내색 않고 한 겹 두 겹... 다섯 겹 걷어올려 줬다. 젓가락 같은 팔. 그 와중에도 난 웬만하면 다섯 겹이 좋아 오복의 뜻이 있는 숫자 5를 좋아하니까 하면서.

  연신 고맙다고 머리 숙이며 수줍게 미소 짓는 여인에게 "쾌유하세요" 인사하곤 뛰기 시작했다.

   "아프면 안 돼" 머리 안은 온통 이 생각뿐이다. 하루를 살아도 활력이 넘쳐야지. 아프면 본인도 서럽고 처량하고 옆에 사람들도 지치고 힘들고, 재난이 되는 것이다. 건강하려면 잘 먹고 잘 자고 맘 편하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운동 잘하고. 순간에 에너지 보충하고 건강해 질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뛰었다. 사지 멀쩡한 것이 이렇게 편리하구나를 온몸으로 느끼며. 이래서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도 말을 하는가 보다.
  아침 일찍부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작은 배려와 친절을 베풂에 뿌듯함은 잠시. 그전에 뇌리를 스쳐간 부정적인 생각들, 한편으로 나는 자신이 너무 낯 뜨겁고 부끄러웠다. 수오지심(羞悪之心)이란 게 이런 거구나.
  조심 또 조심이 생활 철칙인  나, 좋지 않은 일과 엮이지 않기를 바라며 일상이 늘 소심의 끝판. 그게 또 지나쳐 의심병이 생긴 거 같기도 하다. 무엇이나 도를 지나치면 병이다. 항상 긍정 긍정 초긍정하려 강박증처럼 노력하지만 진작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마주치면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사회란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꽉 채워져 순식간에 소설을 구상해버린다. 마음공부를 언제까지 해야만 초연해질 수 있을까? 끊임없이 정진하고 수양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지나치게 의심하는 버릇을 걷어내고 맑고 건전한 생각으로 채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른 아침, 건강한 내가 불편하고 아픈 환자를 바라볼 때 느끼는 이 감정이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인 건가? 맹자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사단(四端) ¹이라는 본성이 있어 이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구분된다고 말한. (仁)의 기본이 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한 사람을 보면 생기는 안타까운 마음), 의(義)의 기점이 되는 수오지심(羞悪之心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 예(禮)의 시작이 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 지(智)의 근본이 되는 시비지심(是非之心 시시비비를 분별하는 마음) 4 덕(인의예지 仁義禮智)이 4가지 단서의 유래가 된다.

  주절주절 맹자왈을 되새김질해본 여름날의 아침운동시간이었다.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날이었다.  

  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해진다. 곱고 바른 심성이 아름다운 인생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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