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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선 Aug 27. 2020

난설헌이 현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소설 "난설헌" 독후감

  허난설헌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관심이 었던 나는 알라딘, 배다리 책방거리, 당근 마켓을 정기적으로 1년  너머 기웃거리다가 얼마 전  동네 알라딘에서 드디어 소설 "난설헌"을 득템 하였습니다. 그 희열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틀 만에 정주행 해버렸습니다.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며 최문희 작의 이 소설은 대하소설  "혼불"(최명희 작)의 문체를 너무 빼닮아 있어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찼습니다.

  읽고 나서 머리에 띵하고 강렬하게 남은 것은 "나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이 부분이었습니다. 불행한 여인의 애달픈 한생이었죠.

  난설헌은 시집가기 전 친정에서는 친정아버님의 차별 없는 오픈 마인드와 딸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아들딸 남녀 구분 없이 교육을 받게 해 8살부터 천재 시인의 두각을 나타내며 시화에 능했습다.  

  자유롭게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며 살아가던 15살 소녀는 안동 김 씨 가문으로 시집가며 불행의 문이 열립니다.  세고 시기 질투심이 넘치는 시어머니의 끝없는 질타와 구박, 모진 학대와 기시, 어머니 기에 눌려 우유부단하고 무능하고 지질한 남편은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안 해의 글 재간을 시기하며 생떼 부리고 못난 짓일부러 골라서 불사하는, 책 읽어 내려가는 사람 숨이 컥컥 막히고 혈압상승 유발하기에 딱입니다. 본체만체 외면하는 시아버지는 아무 도움도 소용도 없고 난설헌에게는 사면이 그야말로 차가운 벽이었습니다.

  험난한 현실 속에서도 조용하고 단정한 기질의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순응하며 묵묵히 인내하며 조신하게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늘은 무심도 하시지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시집살이에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자녀를 병마에 잃고, 친정아버지와 오빠의 객사, 연이어 휘몰아친 소중한 가족들과의 사별은 난설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됩니다. 세상에 마음 붙이고 살아갈 수가 있는 정신의 안식처가 모두 갈기갈기 찢겨나가 버렸으니 감성 여인의 새까맣게 타 버린 속은 지탱할 수 있는 힘마저 상실하고 서서히 사그라지며 절망의 낭떠러지로 한없이 한없이 추락합니다.

  허구한 날 비감에 빠져 슬퍼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면 건강은 바로 무너집니다. 결국 27살에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결말을 초래합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시인, 그것도 여성 시인으로서 감수하고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가 소설 전편에 걸쳐 돌덩이에 꾹꾹 짓눌리듯 심장은 갑갑하고 저려 왔습니다 다. 조선 중기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내느라 고달팠을 한 영혼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27살의 짧고도 한 많은 인생살이, 시어에 녹여낸 암울하고 절절한 삶의 애환과 깊은 통찰력들이 소설 읽는 내내 마음에 너무 와 닿아 같이 아파하고 애석하게 되었습니다. 
  섬세하고 아련하고 아름답고 정갈한 최문희 소설가님의 글 풍이 너무 좋았습니다. 클래식한 글 풍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날로그 내 취향에 딱인 소설이었습니다.

  문장 전편에서 난설헌의 외롭고 서럽고 애달픈 영혼이 글발에 서리서리 맺혀 묻어 나오는 것만 같아서 대입 감 가득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애처로운 마음 금할 길 없었고 우울하고 더욱이 여성으로 고리타분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에 천만다행이었다는 느낌에 스스로 한숨 돌리고 위안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난설헌이 요즘같이 평화로운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자신의 끼와 재능 마음껏 발산하며 자유롭게 멋있게 인생을 영위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시재에 타고난 천재성이 요절함으로 아깝게 함께 사라져 버린 점은 너무 애석하였습니다. 쫌만 덜 강직하고 살짝 여우 같고 융통성이 있었더라면 삶이 더 편리하고 구박도 덜 받았을 테고 건강을 잘 유지해서 요절하지 않았다면 더 훌륭하고 절묘한 시조들을 더 많이 세상에 남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머리 안에서 감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시대를 잘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스페셜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현재 중국 베이징 국가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명나라 때 "조선 시선"(明代 "朝鲜诗选")이란 고서적에는  최치원 김시습 등 대문장가들의 시작과 나란히 蘭雪軒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난설헌의 시조 수량이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설가가 이야기합니다. 천재 여류시인의 요절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난설헌이 세상 뜬 이듬해에 동생인 허균이 누나의 자신이 죽고 나면 모든 유고를 태우라는 유언을 지키지 않고 "허난설헌 시집"을 묶은 것이 그 후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각광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천만다행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단아하고 깨끗하고 정갈한 천재 시인의 감성에 젖어도 보고 아름다운 시들을 흠상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난설헌이 현시대에 태어나서 마음껏 천재끼를 발산하고 당당하고 멋진 커리어로 활약하는 상을 나의 비루한 상상력으로 그려봅니다. 꿈을 꾸는 것은 자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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