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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선 Sep 09. 2020

음악을 끼고 사는 것, 이유가 있나요

음악은 치유고 위로다

  이른 새벽, 세찬 바람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공복에 물 한잔 마시고 수선을 떨고 보니 거실 창문으로 한줄기 환한 빛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어젯밤 태풍이 휩쓸고 간 동녘 하늘 구름 사이로 해님이 앙증맞게 고개  빼꼼히 내밀며 인사를  합니다. 완벽한 해돋이는 아니지만 수줍은 듯 갸웃갸웃하는 해돋이가 귀여워서 미소가 번지니다. 창문 활짝 열고 거추장스럽게 시야를 어지럽히는 방충망 위로 올려 젖히고 신나게 줌인합니다. 잠시 잠깐 붉은 새벽을 안겨주는 해님이 반가웠습니다. 바로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겠지만 말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가을은 성큼 한 발짝 크게 내딛으며 다가왔습니다. 여름 내내 꿉꿉하고 음침하던 음기와 습기를 깡그리 몰아내고 가을의 맑은 공기는 산뜻하게 완벽하게 우주를 휘감았습니다.

  상쾌하게 해님과 눈 맞춤을 했으니 이른 아침부터 음악을 찾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음악으로 표현해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곡(일출)이 딱하니 떠오릅니다. 1973년 카라양과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 버전을  찾아들었습니다. 언제 들어도 가슴 벅차오르게 하는 클래식 음악입니다. 세상을 밝게 비춰주며 가득 채워나가는 빛을 소리가 들리는 듯 온몸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우주 그 너머까지 밝히는 빛을 새삼스레 한번 느껴봅니다. 현악기의 음색이 부드럽고 관악기들도 정제된 소리를 들려주며 음악의 세부가 생생히 살아 있는 연주에 흠씬 빠져 듭니다.

  30여 분간의 연주곡이 끝나갈 무렵, 구름은 말끔하게 자리를 비워주고 태양은 아무런 막힘없이 홀로  두둥실 솟아올라 온 거실을 빨갛게 물들여 주고 습니다. 높아진 하늘 위에  떠 있는 태양의 위력은 눈이 시려 도저히 똑바로 직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 클래식 음악의 서막(일출) 부분이 해님을 불러왔나 봅니다. 덕분에 사뿐사뿐 날아갈 듯한 아침을 열었습니다.

              아침 6시 5분의 해돋이


  나는 음악을 장르 불문하고 그냥 내 귀에 착착 감겨들면 찾아서 듣는 편입니다. 노래든 연주곡이든 재즈든 국악이든. 노래에서도 발라드, 롹, 민요, 트로트 세분하지 않고 그야말로 잡탕에 짬뽕인 셈입니다. 비 내리는 날 듣는 곡이 있고 눈 오는 날, 흐린 날, 활짝 개인 날, 산에서, 바닷가에서, 차량에서, 집에서, 때와 장소에 따라 내 기분에 따라 머리에 떠오르는 데로 자유자재로 마구잡이 듣습니다. 제 귀에 감기고 내 가슴에 감동을 주면 뭣이나 명곡입니다. 가끔 차로 이동할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올드 팝송이나 발라드, 대중가요듣고 있으면 나는 마치 타임캡슐 타고  어린 시절로 순간 이동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랬었지 하며 추억으로 가는 자신이 보입니다. 노래를 들으며 젊은 시절의 나를 볼 수 있다는 것,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내 젊은 시절은 빈약하고 초라합니다. 어릴 적에는 왜 그리도 발라드만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와 닿고 기분에 젖어들며 그랬죠. 삶에 짓눌리고 부대끼며 느끼던 수많은 감상과 애환, 회한과 슬픔, 고민과 좌절, 근심과 걱정, 애달픔과 서러움들이 음악이란 매체에 기대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축축 처지고 돌아버리게 하는  마이너스적인 무게감을 어딘가에는 잠시라도 부리고 한숨 돌려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일진대 사람마다 해소 방식은 천차만별 다양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친구와 수다 떨고 어떤 이는 쇼핑하거나 먹방 하거나 음주하거나 운동하거나.

  나는 나만의 듣고 싶은 음악으로 한숨 돌리고 충전하고 평형을 잡고 툭툭 털고 일어나 가던 길 재촉합니다. 예닐곱 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굳혀 온 습관이니 이제는 그냥 삶 자체 골수에 박혀버려서  하루 24시간에  삼시세끼 식사나  수면, 일을 하는 것과 같이 음악듣기는 일상에  깊이 자리매김을 해버렸습니다.

  아주 가끔씩  어쩌다가  친구들이랑 만나서 수다 떨고 어울릴  때면 모르는 노래 있냐주크박스냐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친구가 있답니다. 그럴 때면 나는 하루 이틀 사이에 헤아릴 수도 없는  음악들을 익힐 수는 없는 거고  수십 년을 매일 듣고 익혀서 쌓인 것이라고 머쓱해합니다. 사회관계 소통에 어설프고 두려워하는 단면이 뽀로록 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놀고 즐기고 신나 하고 산책하며 책 보며 음악 듣고 나 홀로 일하고 하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 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란 드라마 제목처럼 나에게는 타인이 지옥처럼 불편한가 봅니다. 가족 외에 음악과 책이 있으면 너무 충만함에 다른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참 독특하다고 혀를 끌끌 차거나 말거나 전혀 뒷전이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각자도생 하는 거지 뭐 하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희한한 게 50대에 딱 들어서면서 어느 날부터 그렇게 끌어안고 즐겨 듣던 발라드를 잘 안 듣게 됩니다. 클래식이 훨씬 편안하고 그 무드에 빠져듦이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이 어딜 가겠냐만은 클래식 음악가들 사이의 많고 많은 재미있던 일화나 에피소드들 찾아보며 감칠맛이 살아납니다. 요즘 같이 클릭만 하면 지식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맘만 먹으면 소스들은 얼마든지 넘치고 넘쳐납니다.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피곤한 삶이며, 유배당한 삶이기도 하다." 늘 입버릇처럼 자주 쓰는 니체의 명언입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2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한동네 앞동에 살고 있는  동생네가 새 집에 공기 정화용 화분이 있어야 한다며 두 개를 갖다 줬습니다.  나는 내가 정신이 너무 자유자재에 편애주의라서 머릿속에 없던 화분 키우기를 소홀해  화분이 우리 집에 와서 탈이 날까 노심초사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즈음부터  우려했던 데로 밑부분의 새파랗던 잎사귀가 노랗게 변하며 고사할 것처럼 사람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아주 옛날에 친정집에 가면 친정엄마가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화분들을 가리키며 하시던 얘기가 귀에 울렸습니다.

  "신기한게 식물도 시들하다가도 사랑과 정성에는 되살아난단다. 노래도 들려주고 얘기도 해주며 정성을 쏟으면 귀신같이 활기를 되찾는 거 있지."

  "그래. 바로 이거지."

  나는 그날부터 바짝 신경을 기울이며 기한을 정해  물을 주고 클래식 음악이 더 좋을 것 같단 생각에 매일 오전 똑같은 시간에 들려주었습니다. 한 달이 휘리릭 지나갔습니다. 웬걸요, 노랗게 시들어 죽어가던 잎사귀가 새파랗게 복원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느꼈습니다. 음악이 식물에게도 치유이고 위안이구나 하는 것을. 지금도 두 화분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매일 클래식 음악 들으며.

   세월 지나 중년의 길목에 서 있는 담대하고 쾌활하고 명랑한 이 모습은 음악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왕년의 왕소심에 우물쭈물 답답이는 스스로 추억하기에도 안쓰럽고 애처롭습니다. 세월의 힘에 음악을 가미해서 서글서글해진 지금의 자신이 훨씬 흐뭇합니다. 그냥 좋아서 끼고 사는 음악이 있어 하루하루 즐겁게 보낼 수가 있습니다. 요즘같이 외출 시에는 마스크 필수 착용이라 불편함에도 산책길에서는 여전히 이어폰 끼고 음악의 황홀경에 빠져 삽니다. 참 못 말리는  취향입니다.

  세상 만물은 모두 작은 인연들이 모여 삶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란 어마어마한 망망대해에서도 꼭 나랑 인연이 되어 내 마음에 찾아와 꽂히는 곡들이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팬이었던 나훈아님의 "홍시"는 언제 들어도 울컥해서 눈물이 고입니다. 8년 전에 세상 뜨신 친정엄마가 떠올라 듣고 있으면 사무치게 그리움에 어질어질합니다. 가을 하늘 보고 있으니 베이징의 인생 선배님의 18번지 곡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패티김)이 떠올라 흥얼거립니다. 가을을 물씬 느끼게 하는 사람, 그 선배님이 보고 싶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꽁꽁 발이 묶여 옴짝달싹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마음뿐입니다. 세월 좋아져 정상으로 돌아가면 우리 함께 노래방 가서 나의 18번 곡인 "천년바위"를 열창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요즘 온 한국을 들썩들썩하게 하는 트로트가 대세죠. 아주 어릴 적에 나훈아 조용필 주현미 노래를 듣다가 3040대에는 아예 외면하고 있다가 이번 참에 다시 빠져 자주 듣는 편입니다. 가사 노동할 때 노동요로는 신기방기 최고인걸 요즘에 느끼는 중입니다.

  한편에서 남편은 말합니다. "별 수가 없구려. 듣지도 않던 트로트를 틀어놓는 걸 보면 나이가 들었다는 징표라우."

  장르 불문하고 듣기에 편하고 감성 돋우고 감동이 있으면 장땡이라고 나는 맞받아칩니다.

   악기 연주 소리도 바뀌었습니다. 바이올린보다 피아노와 첼로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보다가 문외한이던 재즈라는 장르에도 조금은 눈을 떴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음악들을 영접하며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떤 음악들은 잠깐씩 잊히기도 하고 그런답니다. 

  "음악은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건네는 한잔의 위로주 같은 것이다." 지난 7월에 작고하신 영화음악의 거장이고 전설이신 엔리오 모리꼬네의 명언입니다. 영화를 즐겨보는 나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영화음악입니다.

  삶의 길에서 힘든 일이 많고 많은데 위안을 받을 수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삭막할까요. 나는 좋아하는 음악들이 있어 위로 받음으로 행운이고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음악은 나에게는 망우곡(忘忧曲)인겁니다. 한없이 치유되고 큰 위로를 주는 뮤즈 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평생토록 나의 음악사랑은 이어질 것이며 일편단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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