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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선 Sep 21. 2020

'겁쟁이' 모자(母子)

편견 감옥에 갇힌 남편

  지난 8월말 매미들이 극성스레 울어대던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세 식구는 각 자의 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보거나 듣거나 집안이 조용합니다. 문득 아들이 자신의 방에서 으흐흐흑 비명 지르며 거실로 뛰쳐나왔습니다. 뭐야 뭐야 하며 나도 갑자기 들리는 동정에 깜짝 놀라 거실로 튀어 나갔습니다. 공포에 가득 질린 얼굴로 자신의 방가리키며 진저리를 칩니다. 살금살금 아들 방으로 걸어가 창문을 바라보니 방충망에 왕매미가 겁도 없이 떡하니 걸쳐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순간 움찔하며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고 용감한 남편에게 의뢰하려 남편 룸을 빼꼼히 열었습니다. 깜빡 졸고 있는 건지 뭔가를 듣고 있는 건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쉬는 날에는 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이부자리에 찰싹 달라붙어 뒹굴족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남편, 비스듬히 누워서 천태만상 유튜브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이 여가의 가장 큰 낙입니다. 보다가 졸리면 한숨 자고 또 보고. 삼시세끼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방문 꽁꽁 닫아걸고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 삽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한 요즘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콕이 가장 정확한 생활 자세이니만큼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다. 우리 모자의 웅성거림에 눈을 희번떡 거리며 웬 소란이냐는 귀찮은 표정에 오만상을 찡그리며 거실로 나옵니다. 아들 방에 가보라손짓하니 흐느적흐느적 구시렁거리며 창문으로 다가갑니다.

  "어라, 이 겁대가리 없는 놈 봐라."
  일상에서 겁이라곤 추호도 없는 남편은 이런 상황에는 또 엄청 신나하고 제대로 물 만나 즐거워합니다. 취향저격인 겁니다. 동물세계와 동물농장 류의 프로그램 마니아답게 아무 거리낌 없이 창가에 다가가 한참을 요리조리 관찰합니다. 왕매미가 달아날까 봐 조심조심 자신의 휴대폰을 가져다 찰칵찰칵 사진에 담기까지 합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고 문밖에서 구경합니다. 그야말로 실팍하게 큰 놈인 게 왕매미라며 플라스틱으로  긴 잣대로 툭툭 쳐냅니다. 미련이 있는지 한참이나 더 질기게 버티더니 휘리릭 힘겹게 공중으로 날아갑니다. 날씨가 더우니 매미도 어리바리 길을 잃었나 봅니다.
   아들은 자기 방 근처에 가 거실에서 소름 돋는 듯 오싹해하며 마음 잔뜩 졸이고 매미가 처리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매미와 교감을 마친 남편이 거실로 나왔습니다. 무슨 큰 일을 마치 난 개선장군처럼  생색내기가 바쁩니다. 어깨에 힘을 잔뜩 싣고 아들을 향해 질책 힐난을 시작합니다.
  "남자가? 한갓 매미기겁해서 먼  하겠냐고? 엄마 닮아서는 완전 쫄보......"

  늘 똑같은 레퍼토리......

  아빠 눈에는 아들이 약하고 어설프고 맘에 안 듭니다. 취준생으로 막혀있는 요즘 젊은이들 현실의 막막함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니다. 아빠가 엄청난 편견 속에 갇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자는 외유내강(外柔内剛) 형이고 남편은 외강내유(外剛内柔) 형인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인함과 인내심은 우리 모자가 훨씬 한수 위입니다. 소리없이 강하고 조용한 사람의 내공을 너무나 모르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큰 일이나  난관 앞에서는 훨씬 담대하고 차분하고 이성적입니다.
   20 대 중반 성인이 다 된 아들은 나를 닮아 '겁쟁이'입니다. 유전의 막강한 힘이긴 한데 용감무쌍한 마초 기질 아빠를 제치고 세상 '겁쟁이'인 엄마를 닮아버렸습니다. 자식이라곤 단 아들 한 명뿐인데 엄마 닮아 용감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많고 섬세하고 대화할 때 작은 어톤, 소심함에 아빠는 미치고 환장하겠다며 자주 거칠게 신경질적으로 지적합니다. 심지어 엄마 닮아 하얀 피부에 무쌍의 가는 눈도 맘에 안 듭니다. 본인의 검실한 피부와 부리부리 찐한 쌍꺼풀 왕눈이 상남자의 표본이라며 대놓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 상반대인 아들이 눈에 찰리가  없습니다. 남자가 새들새들해서 어디 쓰냐며. 소심남과 마초남이 한 공간에 있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아들의 소심하고 조신한 성격에 절대로 아빠의 막무가내 성격에 말려들질 않습니다. 아빠니까 자격이 있고 주어진 권리라고 체면 살려준다며 요량 요리조리 피해 다닙니다. 붙어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걸 너무 잘 알어서죠. 아빠의 쓸데없는 권위의식인걸 잘 알면서도 그 허영심을 지켜주자는 착한 효심이 마음 밑바탕에 깔려있는 어진 배려이기도 하겠죠.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극단적 개인주의 아빠랑 부딪히는 행위를 미련하고 우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나는 한쪽에서 아들에게 현명하다고 엄지 척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참는게 최고라며. 우리 모자는 집안에 고성이 오고 가는걸 딱 질색이니 무조건 피하려고 합니다. 성냄과 분노의 폭주는  아빠 쪽의 전문이여서 우리 모자만 잠깐 침묵하면 혼자 떠들다가 조용하게 넘어가니까요. 그래도 요즘은 폭탄이 터져 시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참다 참다가 한 번씩 내가 들이받을 때입니다. 작정하고 온갖 직설 독설을 날려버립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화를 무조건 참는 다는 것에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전같지 않게 울화통이 뻗치면 스스로도 감당이 안되게 터집니다. 세월의 힘이란게 있는 같습니다. 세상 촌스럽게 생겨갖고 천박스러운 짓은 도맡아 하는 무식쟁유치짬뽕 삐질이 쪼잔한 꼰대라고 폭탄을 시원하게 투척니다. 그야말로 악을 바락바락 씁니다. 30년 참고 살아온 세월만큼의 서러움과 불만을 쏟아냅니다. 말이나 글이 난폭해지면 그 무엇보다도 위력 있고 파괴력, 살상력이 있다는 걸 잘 알면서 미련한 짓을 자행합니다. 순간 치미는 화를 주체 못하는 분노조절장애남편 심기를 건드리는 건 아주 위험하게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알면서도 자폭을 해버리는 겁니다. 펑펑 폭탄이 터진 집안은 쑥대밭이 돼버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간에 끼여 있는 아들 몫으로 돌아갑니다. 독배는 쓰겁고 참담합니다. 나는 상처 받는 아들이 안쓰럽고 가여워서 또 참을성을 되레 살려 냅니다.  아직은 아들이 자취 독립하는 것을 원치 않아 될수록 끼고 사는 동안만큼은 평화로운 집안 분위기 만들어 주고 싶으니까요. 한동안만 또 참자  참아내자 하며 인내심 살려 냅니다. 갱년기 지나겨우 살아난 용기와 센 기운 수련하는 마음으로 다시 누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문자화 하는 것이 나의 소심한 복수이고 조금은 숨통이 트입니다. 개운하고 후련합니다. 이 글을 보고 난감하고 머쓱해 할 남편의 표정 상상하며 몰래 깨고소하고 있습니다. 희한하게 글이나 문자로 들이받을 때는 그 화력이 말보다 훨씬 험악해도 잘 참아내는 남편입니다. 다툼 없는 집안이 있을까요? 그렇게 우아하게 고운 것만 보고 싶고 예쁜 말만 쓰면서 살아가고 싶었건만 30년을 살아보니 그게 또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이상은 이상일 뿐입니다. 그냥 바람이고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현실의 참담함과 서글픔에 와장창 무너져 내립니다. 완벽한 사람 듯이 달처럼 차다가 기울다가 사람 사는 이 다 그런 건가 봅니다. 헛점 투성이고 모자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보완하고 위안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세상인가 봅니다. "이상적인 결혼은 눈 먼 여자와 귀머거리 남자와의 결혼이다" 팔만대장경에 나와 있다는 이 글귀 떠올리며 두루뭉술 넘어갑니다. 웃픈......


  편견에 대항하는 논리는 그림자에 대항하는 싸움과 같다. 그것은 편견에 뚜렷한 영향을 주지 않고 논리자를 지치게 만든다. 바람이 햇빛을 대신할 수 없듯이 논쟁으로 가르침을 줄 수 없다. (챨스 마일드 웨이)


 이런 명언들을 가족 톡방에 공유하면서 자아반성을 유도해봐도 메아리는 없고 끄떡없이 마냥 시끄럽고 본인 생각은 절대로 다 맞편견이 아니라고 우깁니다. 꼰대 아빠라고 놀리면 얼굴 벌게지며 벌컥벌컥 냅니다. 가부장적 권위의식에 갇혀서 고집과 아집, 편견 선입견으로 똘똘 뭉친 철옹성을 겁쟁이 우리 모자가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방관합니다. 낼모레면 환갑인 사람을 어떻게 뜯어고치지도 못합니다. 쓸데없이 논쟁이 붙으면 고성만 오고 가다가 기분 잡치고 짜증 나고 허탈해지기만 합니다. 본인 스스로 깨닫고 성 밖으로 나와서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꽉꽉 막혀버린 인식의 틀 속에 갇혀 사는 사람만 외롭고 쓸쓸할 텐데, 용기가 나질 않나 봅니다. 쓸데없고 거추장스러운 가부장적 생각과 남성중심주의 의식만 버려도 삶이 훨씬 후련하고 가벼워지고 상쾌해질 텐데 말입니다. 구닥다리 옛날 사고방식을 무겁게 짊어지고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겁쟁이'모자 이야기로 시 돌아옵니다. 나와 아들의 공포증 증세는 조금은 다릅니다. 아들은 날아다니는 곤충류를 혐오하고 질색합니다. 나방이나 잠자리 매미 파리 모기 바퀴벌레 같은 류를 마주하면 비명을 지르고 질색팔색 피해 다닙니다. 나는 뱀이나 지렁이 송충이 지네 같은 파충류를 두려워합니다. 티브이나 그림에 비치는 것 보는 것도 소름 끼쳐합니다. 낙지탕탕이는 요리이지만 혐오스러워 가까이 근처에 놓지도 못하게 합니다. 스멀스멀하는 느낌이 극도의 공포로 번지며 도저히 극복이 되지 않습니다. 의외로 아들은 아빠랑 둘이서 낙지탕탕이는 잘 먹습니다.

  우리 모자는 이런 공포심과 두려움에서 특히나 동병상련입니다. 둘 다 정(静)적인걸 좋아하고 동(動) 적인걸 싫어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공통분모가 많으니 역지사지하며 서로 잘 의지가 되고 단합을 잘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자잘한 공포심을 전혀 인지 못하는 남편은 핀잔이나 조소 야유 구박을 일삼으며 거리낌 없이 막말 작열입니다. 본인의 치밀하지 못하고 심한 건망증, 일의 끝마무리를 똑 부러지게 안 해 두루뭉술하게 지나쳐 후유증 남겨 일을 반복하는 거, 본질을 잘 볼 줄 모르고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일을 그르치고 쉽게 사기당하는 경향, 치명적인 단점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런 것들을 거론할라 치면 방어부터  하면 폭언도 남발하니 우리 모자는 상처 받기도 싫고 지겨워 맞대응 안 하고 마음에 두지도 않고 그냥 쿨하게 넘겨버리는게 살 길입니다. 설득하거나 해석해서 공감하고 이해를 구하기에는 지나친 고집불통이기 때문입니다. 염라대왕이 와도 그 왕고집은 꺽지 못할 겁니다. 맞장구를 치며 이유 달고 논쟁해봤자 답도 없고 쓸데없는 입씨름에 기분만 잡치고 우울해지니까요.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늘 렇게 자아반성을 모르는 꼰대 어른은 되지 말자고 스스로 경고하고 채찍질합니다. 좋은 거울로 삼는 겁니다. 거칠고 하게 나이 듦은 재난같이 느껴지니까요. 곱게 우아하게 익어가진 못할지라도 조금만 신경 써서 무난하게 눈살 찌푸리게만 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다 제 나름의 트라우마나 공포심이거나 두려움 같은 것들을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다양하고 천차만별이어서 별의별 희한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남편처럼 일상생활에서 용감하고 대범해 거침없으면 일상이 훨씬 편리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자처럼 '겁쟁이'들을 비난하고 질책할 것 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남편은 자신의 선택 장애와 우유부단함은 함구무언입니다. 한 가지 일을 선택하고 해결하고 마무리 지으려면 우물쭈물 세월아 네월아 미루기 일수니 옆에 보고 있는 사람 기가 차고 답답해 미치기 일보 직전입니다. 반면 우리 모자는  빠른 결단력처리를 깔끔하게 똑부러지게 후다닥 해 치우는 스타일입니다. 소리없이 강한 사람이 진짜 강자 아닐까요?스스로 불편해도 공포증을 끌어안고 살아가더라도 나름 각자 인생의 낙들이 있을 테니까요. 사람마다 개성의 차이들이  있는 거죠.

  스스로 당당하고 씩씩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겠는데 실제 일상에서 마주치면 극복 못하는 부분이 이런 것입니다.

  강아지 공포증, 사방이 꽉 막혀있는 공간에 오래 있으면 심장 터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공포증, 긴 터널을 지날 때 답답함과 아찔함에 눈을 감아버리는 습관, 높은 곳에 오르면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고소공포증, 두루두루 공포증은 참 많이도 걸쳐 있습니다. 50년 이상 살고도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을 고치지 못하는 '겁쟁이'입니다. 나이 들어도 변치 않는 이런 장애들을 굳이 이겨내고 극복하려고 낑낑거리지 않고 친구처럼 끌어안고 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두려움, 공포심이 있지만  다정하게 어깨동무하고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살아가렵니다. 더 이상의 피곤함과 불필요한 강박증은 버릴 겁니다. 물이 흘러가듯이 살아갈겁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에게 복이 올겁니다.

  '겁쟁이'라서 불편한 점이 두루두루 많아도 이 시각 Buzz의 "겁쟁이" 들으며 삶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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