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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봇 Oct 03. 2020

만두의 자기소개서

숨은 만두소, 숨은 잠재력

세상에 먹음직스러운 요리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고기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거나, 식재료를 썰지 않은 통째로 써서 크기로 압도하거나, 한 냄비 안에 온갖 해물과 고기, 사리류를 있는 대로 꽉꽉 채워 푸짐함을 강조하기도 하죠. 채소와 과일 본연의 빛깔을 써서 형형색색 예쁜 샐러드를 만들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유럽 어딘가에서 직접 공수해왔을 빈티지 접시라도 써서  ‘인스타그래머블’한 비주얼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요리들이 사진도 예쁘게 나오고, 또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마련이지요.


 아쉽지만 만두는 그런 종류의 요리는 아닙니다. 구웠든 쪘든 튀기든 밀가루로 만든 만두피의 생김새는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만두소는 또 어떻고요. 갓 나온 따끈따끈한 만두 접시를 찍으면 만두소는 아예 보이지도 않습니다. 소를 보여주려고 반을 가르기라도 한다면 이미 예쁜 만두 모양은 물 건너갔죠. 결과적으로 만두는 예쁜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는 힘든 요리라는 겁니다.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의 시대에서 만두가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홍보할까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만두와 차별화되는 대단히 특별한 무언가를 내세우기도 어렵고, 화려한 사진을 통해 비주얼을 뽐내는 것 역시 어려우니까요.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만두 맛집들을 살펴보면 대개 1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곳들이 많습니다. 맛에 대한 개인의 선호와는 무관하게, ‘30년 전통의…’라는 타이틀은 이미 평균 이상의 맛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로 쓰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로 생긴 신생 만두집에서 매력을 어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한입만 맛보면 누가 먹어도 너무너무 맛있는 만두인데 이걸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만두 한입 맛보게 해주고 싶은데 말입니다.




청년실업률이 달이 지날수록 최고치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20대 중반에 들어선 청년들은 자기 한 몸 몸담을 곳을 찾기 위해 연일 카페에서 소설을 씁니다. 자기 생애를 기반으로 한 팩션(faction), ‘자소설’ 말입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입니다. 돈이 필요해서 돈이 벌고 싶다는 지원동기를 5,000자로 늘려 쓰는 작업입니다. 왜 어딜 가나 입사 후 포부를 그렇게 물어보는 건가요? 또 입사 후 5년 후 계획은 지금 어떻게 알겠나요, 당장 한 치 앞 내일 일도 모르겠는데…


 수많은 청년들은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는 서류전형에서, 그리고 그 이후 면접전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곤 할 겁니다. 모든 지원자들을 합격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결론이지만 또한 너무나 마음 아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채용이라는 것은 마치 인사담당자와 임원진들의 마음에 쏙 드는 맛있는 만두를 찾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만두를 실제로 먹어보기 전까지는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어렵듯이, 자기소개서와 몇 번의 면접만으로 저 깊은 잠재력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니 부디, 그들의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너무 낙심하지는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만두소는 사진에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 만두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맛은 천차만별이듯, 평범해 보이는 말과 글 아래에는 언제든 밖으로 나올 준비가 된 끝없는 능력이 숨어있습니다. 그 숨은 맛을 알아주는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분명 있을 것이라고, 그런 확신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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