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봇 Sep 26. 2020

한여름밤의 만두

차게 먹는 여름 만두, 편수


만두 하면 생각나는 조리법은 굽기, 찌기, 삶기, 튀기기. 그러니까 대부분의 만두요리는 따뜻합니다. 모름지기 맛있는 만두는 김이 모락모락 해서 반으로 가를 때 육즙이 쭉 흐르고, 그래서 잘못 먹었다가는 입천장을 데기 십상인 것이지요. 그래서 무더운 여름철에 만두를 맛있게 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시원한 냉면에 곁들이는 만두 정도일까요. 따끈한 만둣국이 여름보다는 겨울철에 더 인기가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만두 매니아라면 한 번쯤 만두를 시원하게 먹을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찬 만두요리도 있다는 걸 알고 있겠군요. ‘찬 만두’라는 건 얼핏 생각하면 ‘찬 불고기’나 ‘찬 떡볶이’처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잘 만든 만두와 시원한 육수의 만남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 조화로움에 감탄할지도 모릅니다.


시원한 만두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전국에 분점이 있는 ‘북촌손만두’의 메뉴 중 냉만둣국이 있습니다. 만둣국이라 하면 뽀얀 사골국물이 먼저 생각나지만 냉만둣국의 육수는 다릅니다. 맑고 살얼음을 동동 띄운 전형적인 냉면육수. 그 안에 김치만두, 고기만두 그리고 굴림만두가 들어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만두를 왜 얼음물에 빠트려놓았느냐고 이상해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팬층이 두텁습니다.


이 냉만둣국이 왜 맛있나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식은 만두를 그대로 먹는다면 밀가루의 텁텁함과 고기의 기름진 육향이 두드러질 테지요. 그런데 머리가 찡해지는 시원한 육수가 들어간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차가운 만두의 단점이 보완되는 건 물론이고, 육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차가운 만두의 맛이 어색함 없이 다가옵니다. 계란지단과 김가루 그리고 솔솔 뿌린 깨는 고소함을 더하지요.


 북촌손만두 냉만둣국이 직관적인 동네 맛집의 맛이라면, 예부터 전해져 오는 궁중의 고고한 맛도 있습니다. 종로구 ‘자하손만두’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인 ‘편수’를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 중 하나입니다. ‘편수’는 개성지방의 향토음식으로, 그 어원이 ‘납작한 편(匾)’자를 쓴 만큼 대체로 둥근 다른 만두에 비해 평평한 모양이 특징입니다. 만두를 네모나게 쪄서 그냥 먹기도 하지만 양지머리를 삶은 물을 식혀 띄워 먹기도 합니다.


‘자하손만두’의 편수는 보자마자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네모나고 정갈하게 빚은 만두는 상자를 예쁘게 감싼 보자기를 연상케 합니다. 만두소에는 고기와 함께 아삭한 오이와 향긋한 버섯이 들어있습니다. 따뜻하게 찐 편수도 물론 맛있지만, 이 만두의 진가는 ‘편수찬국’을 주문했을 때 비로소 나옵니다. 맑고 찬 육수에 편수를 넣고 그 위에 갖은 색깔의 고명을 얹었습니다. 예쁜 요리를 앞에 두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맛을 음미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궁중의 정갈한 수라상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그 옛날 임금이든 양반집 자제이든 아무튼 지체 높은 신분에 빙의해서 한입 맛을 봅니다. 아아, 알싸하고 시원하구나. 오늘도 한 그릇의 편수로 무더운 날을 보낼 수 있겠구나. 담백하고 은은한 육향을 느끼며 또 한 번의 뜨거운 여름을 보내곤 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만두도 하나 시킬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