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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영 Feb 12. 2021

슬픔을 기록하는 희망

도서『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고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눈먼 자들의 국가』는 2014년 <문학동네>에 연재된 글들을 엮은 책이다.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배명훈, 황종연, 김홍중, 전규찬, 김서영, 홍철기 모두 12명의 작가들이 세월호참사를 지켜보고 한 해가 지나지 않은 채로, 슬픔을 기록하는 마음을 에세이로 담아냈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힘을 잃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옅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하게 되며, 그 이야기에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굳이 더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느낀다. 이미 기록된 이야기들은 그저 존재할 뿐 읽히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제는 지겹다”라는 여론이 점점 자주 보이는 게 되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함께 목격했던 그 참사에 대해서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던 작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우리는 그 당시에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텐데, 그 마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잘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과 지금은 모두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사실만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4월 16일 이후 어떤 이에게는 ‘바다’와 ‘여행’이, ‘나라’외 ‘의무’가 전혀 다른 뜻으로 변할 것이다. 당분간 ‘침몰’과 ‘익사’는 은유나 상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눈먼 자들의 국가』 中


삶은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이 몇 겹의 다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검은 바위를 철썩거리는 파도처럼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밖에 말 못해서 미안하고, 가만히 있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고밖에 말 못해서 미안해지는, 어쩔 줄 모르겠는 밤입니다.
김행숙, 「질문들」, 『눈먼 자들의 국가』 中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제목은 일본의 소설가 주제 시라마구의 대표작인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왔다. 시라마구는 갑작스런 ‘실명’이라는 상황을 통해 인간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주인공을 통해서 서술된다는 점이다. 사건을 관망하고 기록하는 것은 ‘눈먼 자’들이 아니다. 슬픔을 기록하는 자는 ‘눈먼 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자들이다.

그리고 12명의 작가의 에세이 모음집을 박상규 소설가가 이름 붙인 『눈먼 자들의 국가』로 제목을 붙였다는 지점에서,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요청으로 읽힌다. 그것은 더 이상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에 순응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박상규)는 것이다.


인간은 무능해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고 또 인간은 나약해서 일시적인 공감도 점차 흐릿해진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신형철, 계간 <문학동네>, 편집주간 中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이었던 신형철은 언젠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썼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였다. 슬픔이 흐릿해지고 마음이 옅어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일이다. 우리는 무능하고 나약하니까. 가라앉는 배를 함께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슬픔을 기록한다면,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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