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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영 Feb 14. 2021

장례식 -상(上)

에세이

나는 지금까지 세 번의 장례식에 갔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친구. 두 번째는 아는 누나의 장례식이었다. 한때는 친했지만 자연스럽게 연락이 소홀해진 사람들이었다. 요즘 걔는 뭐하고 있으려나. 누나는 아직도 독립 영화를 찍고 있나? 생각은 가끔 하면서도 연락까지는 하지 않는 사이. 



첫 번째는 22살이었다. 고등학교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SNS를 통해서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다. 친구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친구는 내게 “언제 밥이나 먹자”고 말했었다. 우리는 정말 가끔 연락이 닿는 사이였다. 만약 친구가 죽지 않았다고 해도, 친구와 밥을 먹는 일 따위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 이유가 더 이상 친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에게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는 혼자 갔다. 분향은 오른손으로 하고, 절은 두 번 반. 헷갈릴까 봐 인터넷으로 검색한 내용을 중얼거리면서 갔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음악을 했다. 머리가 똑똑해서 중학교 때부터 영재라고 불리던 친구였다. 수학을 아주 잘했고 어린 나이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다른 친구들처럼 날라리끼가 있었다. 장례식장 입구 모니터에 친구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영정사진 속 친구의 머리는 샛노란색이었다. 나는 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친구의 영정 사진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두 번째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24살 즈음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사은품을 증정하는 일이었다. 사람이 몰릴 때는 바쁘고 아닐 때는 한가했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계속 몰려와 숨돌릴 틈이 없었고 그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계속 전화가 걸려 와 신경이 쓰였다. 유독 불친절한 손님들이 많아 기분이 상했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만날 약속이 있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오래전에 잡은 약속이라 저녁 늦게 친구들과 만났다. 술을 마시다 혼자 바람을 쐬러 나와 휴대폰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했다. 재미 오빠인데요. 메시지보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아침부터 전화가 왔던 번호였다. 갑자기 술이 깨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누나는 영화제에서 만나 친해졌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었고 또 지나고 보니 우리 학과 수업을 청강해서 듣고 있었다. 누나는 내게 영화제에 가자고 자주 말을 걸곤 했다. 번호로 전화를 거니 어떤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누나의 친구인 것 같았다. 여자는 아주 조심스러운 단어를 사용해 누나가 죽었다고 말했다. “재미가 오늘 하늘나라로 가서요.” 나는 아직도 전화기 너머까지 느껴지던 목소리의 떨림을 기억한다. 오늘 하루 종일을 소중한 사람의 부고를 전달했을 참담한 떨림.


나는 술자리에서 망하니 앉아 있다가 집에 들어갔다. 다음날 학교를 결석하고 장례식장에 갔다. 누나를 함께 아는 사람들과 시간을 맞췄다. 출발하기 전에 책장에 있는 새하얀 표지의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박정대 시인의 <그녀에서 영원까지>. 시집에서 시인이 자신을 전직 천사라고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시집 안 쪽에 짧은 편지를 썼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누나가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던 것 같다. 나는 그 하얀 시집을 국화 대신 올려두고 도망치듯 나왔다. 



나는 때때로 두 사람의 장례식에 대해서 생각한다. 노란머리의 영정사진을 보고 식장에 들어가지 못했던 장례식과와 들어갔지만 도망치듯 나왔던 장례식. 나는 무엇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죽음이 너무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죽어서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죽었다는 것이 체감되지 않아서. 죽었다는 말이 너무 어려워서. 


자꾸 친구와 누나의 SNS에 들어가 아직도 그대로인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지 못해서, 함께 영화제에 가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상기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떻게 이 글을 끝맺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장례식장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은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덧붙인다. 


젊은 날에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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