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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영 Feb 14. 2021

할아버지

에세이

어렸을 때 아주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갔다. 시골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가서 어떤 음식을 먹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기억. 나는 시골에 가는 것이 싫었다. 차를 무척 오래 타야만 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자고 일어나도 아버지는 계속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시골을 떠올리면 차안에서 바라본 어두운 산길의 풍경이 생각난다.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다. 시골집은 아주 오래된 옛날 집이었고 방문이 모두 창살이었다.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쉽게 구멍이 났던 것 같다. 시골집에는 침대가 없어서 할머니가 두꺼운 이불을 꺼내주셨던 것도 기억난다. 



또 시골이 싫었던 이유가 하나 생각났다. 시골집에는 화장실이 집과 떨어져 있었고 오래된 전통 화장실이었다. 변기가 아닌 쇠로된 의자가 놓여있었고 엉덩이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의자 아래 똥통 구멍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냄새도 무척 심했겠지만 고약했던 냄새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쇠로된 의자에 앉아 볼일을 보며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의자에 앉으면 무언가에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늘 화장실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아마 지금 그 화장실에 다시 가게 된다고 해도 무섭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시골집에는 가지 않게 되었고 가끔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는 뵈러 갔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것 같았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다 했다. 어느 날 어머니께 할아버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어머니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어? 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도 장례식장에 갔어?”

“응? 넌 할아버지 뵌 적 없는데? 너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어.”


나는 어머니가 장난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태연한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서늘해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기억하는 시골에 대해서 설명했다. 개구리도 있고 똥냄새도 나고 화장실도 무서웠던 그 시골. 나뿐만 아니라 우리 또래가 기억할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에 대해서. 그러자 어머니는 “아-.” 하면서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설명했다.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만난 할아버지였다. 두 분은 마음이 맞아서 시골에서 함께 동거를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시골은 그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할아버지라고 믿어왔던 분이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니. 다양한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원래도 어두운 분위기로 기억되던 시골에 대한 기억이 순식간에 오싹한 이야기가 될 뻔 했다. 하지만 스무 살 넘도록 친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분이 경로당 할아버지였다고 생각하면 갑작스레 유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님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속의 할아버지. 내가 기억하는 시골은 그 할아버지가 보여준 시골의 풍경이었다. 나는 아직도 종종 그 시골의 풍경을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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