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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책방 Dec 06. 2024

<넥서스> 대신 읽어드립니다: 인간 네트워크

인간과 정보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 중 그 마지막을 장식할 <넥서스>는 '정보 네트워크'를 중점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이야기 중심의 역사관을 구축한 유발 하라리의 관점이 이 책에서도 드러난다. 이야기를 구성단위가 되는 정보가 무엇이고, 어떻게 인류사에 작용했는지 면밀히 살펴보도록 하자.


<넥서스>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인간 네트워크
2. 비유기적 네트워크
3. 컴퓨터 정치


비유기적 네트워크란 컴퓨터,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공유하는 네트워크로 인간과 다르게 움직인다. 그들의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 네트워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보란?

정보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말과 기록이 정보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보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손짓도 하나의 정보이며 신호로 활용된다면 무엇이든 정보가 된다. 책 표지에 그려진 비둘기는 전투에서 정보로 활용되었다. 이렇듯 정보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적절한 맥락이 주어지면 무엇이든 정보가 될 수 있다. 


순진한 정보관

그렇다면 정보는 늘 진실만을 말할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책에서는 '순진한 정보관'이라고 표현한다. 순진한 정보관은 정보는 진실만을 전하며, 오염된 사실은 정보의 양이 증가하고 흐름이 자유로워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틀렸다. 정보는 점성술 같은 허구도 포함하며,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자유롭게 흘러도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마녀사냥이 있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이전보다 폭발적으로 정보가 많아지고 자유롭게 흘렀지만 마녀사냥이 사라지기는커녕 부추기는 효과를 낳았다. 순진한 정보관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일이 전개된 셈이다. SNS의 등장으로 정보의 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해진 지금 과거보다 진실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을까? 정보는 사실을 재현하는 일에 충실하지 않는다.


정보의 결정적 특성은 재현이 아니라 '연결'이다. 책에서는 정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정보란 서로 다른 지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무언가다."


책 제목 '넥서스'는 정보의 연결점을 뜻한다. 넥서스가 바로 정보의 핵심이다. 정보는 진실을 포함할 수도 있고, 허구를 포함할 수도 있다. 때로는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 있어 진실보다 허구가 효과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사피엔스>에서도 살펴보았듯 인류가 대규모로 연합할 수 있는 이유도 허구를 믿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정보는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현실을 정확히 기술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 책은 순진한 정보관을 비판하며 정보는 진실보다 인간 간의 연결, 즉 질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문서와 관료제의 등장

인간의 뇌는 한계가 있다. 용량이 제한적이고, 이야기는 잘 기억하지만 목록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몇 천 쪽에 해당하는 경전은 암송하지만, 2쪽으로 이루어진 세금명세서는 암기하지 못한다. 이런 한계에 부딪힌 인류는 문서를 개발하여 문제를 극복했다. 문서는 빠르게 퍼졌고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문서는 국정 운영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문제는 문서가 세상을 정확히 재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 마을에 소가 11마리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서기관이 실수로 10마리가 있다고 문서에 작성하였다. 그것을 보고받은 왕은 그 마을에 소가 10마리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과 문서 사이에 괴리는 이토록 쉽게 발생한다. 그렇게 발생한 괴리로 인해 충돌이 발생할 경우 대부분 문서의 승리로 갈등이 마무리된다. 문서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힘을 지녔다. 문서는 억울한 사람을 양산하고 지도자의 눈을 가리는 데 사용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에서 발생한 대약진 운동이 있다. 상관의 불호령이 무서웠던 하급 관리들은 곡식 수확량을 부풀려 문서를 작성한다. 문서를 보고받은 상관은 흡족해하며 곡식의 대부분을 수출해 버린다. 실상은 그러지 못했고 최소 3000만 명이 아사했다고 전해진다. 문서가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다.


국정 운영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관료제'이다. 관료제는 영어로 'bureaucracy'인데 서랍장에서 파생된 용어다. 우리가 물건을 서랍장에 정리할 때 쓰임에 따라 분류하듯이, 국정 운영을 부서로 쪼개 관리하는 방식을 관료제라고 일컫는다. 관료제도 문서와 같은 문제를 갖는다. 하나의 사건을 다루더라도 부서에 따라 관점이 다르기 마련이다. 진실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각자 자신의 부서에 맞게 가공하여 사용한다. 세상을 몇 개의 관할로 나누어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관료제는 출발부터 진실보다는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문서와 관료제는 진실보다는 질서유지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속성은 사람들을 때로 겁에 질리게 만들기도 한다. 문서의 위력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들은 봉기를 일으킬 때 가장 먼저 문서보관서에 불을 질렀다. 문서와 관료제의 역할과 문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자정기능

자정기능을 중심으로 종교와 과학을 비교해 보자. 종교는 자정기능이 매우 약한 정보다. 무오류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잘못을 다잡을 생각이 없다. 성경은 완전했고 틀릴 리 없다고 여겼다. 종교는 무오류성을 권위로 내세우며 사회에 질서를 부여했다. 물론 성경이 무결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류투성이인 사람이 엮은 책에 불과하다. 성경은 정경화 과정에서 편집과 수정을 겪은 인간의 산물이기에 오류는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교회는 자정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말을 바꾸지 않는다. 무오류성을 부정하는 순간 교회가 부여한 질서가 흔들린다.


반면 과학은 자정기능이 매우 강하다. 왕이나 교황처럼 절대 권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권위를 갖는 이유는 과학의 강한 자정기능을 사람들이 신뢰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정보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쓰인다. 과학은 기존의 이론의 모순이 발견되면 이론을 철회하고, 새로운 이론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강한 자정기능은 신뢰를 얻지만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지 못한다. 변화무쌍한 질서는 질서가 아니다. 따라서 과학은 늘 질서를 필요로 한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자정기능은 정치 체제에서도 중요한 속성이다. 전체주의는 자정기능이 약하며 모든 정보를 중앙으로 불러 모은다. 최고 권력자의 말은 틀릴 수 없으며 그의 말이 곧 질서다. 반면 민주주의는 삼권분리를 기반으로 독립된 기관끼리 견제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정보는 분산되고 자유롭게 흐른다. 행정부가 숨기려는 정보를 언론사에서 보도할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자정기능을 강화한다.


중앙집권적인 전체주의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했다. 전신, 전화, 증기가 발명으로 국민을 철저히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가 틈새로 흐르는 일을 방지하고 모두 중앙으로 흐르도록 수도를 놓을 수 있었다. 소련의 경우 모든 정보는 모스크바를 향했고, 중앙에서 모든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전체주의는 질서 유지에 탁월하지만 병목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전달이 되지 않거나 쌓인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기술이 없던 시기 전체주의는 완벽하게 작동하지 못했다. 정보 처리에 특출 난 인공지능의 발전을 활용한다면 잊힌 전체주의가 발전된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등장할 수 있다.


대규모 민주주의도 기술의 발전으로 실현되었다. 로마 시절 대규모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정치 체제였다. 선거에도 물론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려면 상대가 가청거리에 있어야 하고, 주제를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중매체가 없던 로마는 대규모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었고 전제군주가 제국을 다스렸다. 


정치 체제는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그리고 기술은 정보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정리하면, 기술은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인공지능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이 현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서는 3장. 컴퓨터 정치에서 더 자세히 논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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