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교의 등장
인본주의의 위기
인본주의는 '개인(individual)'을 전제로 쓰인다. 개인은 영단어 뜻처럼 나눌(divide) 수 없는(in)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개인이 불가분의 존재라는 인본주의의 믿음이 잘못 됐을 수 있다.
만약 개인이 단일한 자아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인본주의의 교리를 어떻게 따라야 할까?
연구에 따르면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가 겪은 사건에 허구를 보태 말을 지어냈다.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는 일치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험하는 자아의 목소리를 따라야 할까? 이야기하는 자아의 목소리를 따라야 할까? 자유의지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인본주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사건은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의식과 지능은 한 몸이 아니었다. 의식과 지능의 중대한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비의식적 알고리즘은 의식이 없지만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지녔다. 군대와 기업은 이 존재가 충분히 쓸모 있다고 판단한다는 점은 인간에게 큰 위협이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감정에 치우지는 일이 없고, 휴식이 필요하지도 않다. 인간의 한계로 해낼 수 없던 일을 인공지능은 해낼 수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밀려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지금껏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존재는 나'라는 믿음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금 나의 혈당을 맥박수를 내가 잘 알까?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가 잘 알까? 지금도 많은 이들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외부로부터 얻고 있다.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가 당뇨병 환자에게 지금 당장 인슐린을 맞아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자신이 느끼기에 멀쩡하다며 이 신호를 무시할 수 있을까?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존재가 등장한다면 인간은 서서히 결정권을 그들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나 둘 결정권을 외부 알고리즘에 넘겨주다 보면 인본주의의 질서가 흔들릴 것으로 책에서는 내다본다.
새로운 질서의 등장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는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면 새로운 질서가 그 자리를 메웠다. 애니미즘이 신본주의로, 신본주의가 인본주의로 대체되었듯이 말이다. 인본주의가 무너지면 그 자리에 어떤 질서가 들어설까? 책에서는 유력한 후보로 두 가지를 소개한다. 기술 인본주의와 데이터교가 그것이다.
기술 인본주의는 초인간의 등장을 암시한다. 초인간이란 나의 생화학적 알고리즘을 분석하여 결정을 내리는 외부 알고리즘을 장착한 인간이다. 쉽게 말해, 나 보다 나를 잘 아는 알고리즘을 장착한 사이보그라고 보면 된다. 초인간이 되면 인간은 주관을 잃고 외부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실수가 없고, 지능이 높으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다. 더 이상 내면의 목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 알고리즘이 주는 신호에 따를 뿐이다. 인간에게서 욕망은 사라지고 데이터가 감각, 감정, 생각을 대신할 것이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말들이 진지하게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또 다른 후보는 '데이터교'이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인간이 동물보다 신성한 이유는 우주의 데이터 흐름에 더 많이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데이터교에 따르면 정치 체제도 데이터 처리 방식에 따라 구분된다. 민주주의는 정보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전체주의는 정보를 중앙집권화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넥서스>에서 이어진다.
책에서 심각하게 바라보는 점은 기술의 발전으로 복잡하고 방대해지는 데이터를 현 정치 체제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술이 정치를 앞서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사회 현안이 복잡해지자 정보 분석을 인공지능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분석한 결과를 전적으로 따른다. 어떻게 인공지능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살펴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살펴봐도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주식시장은 알고리즘에 결정권을 내어준 지 오래다. 그렇게 점점 정치적 결정에 있어 인간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다. 빅데이터와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더 견고하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한다.
데이터교는 정보의 자유를 최고의 선으로 친다. 정보의 흐름이 자유로울 때 세상이 발전한다고 믿는다.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되려면 충분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정보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생활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거대한 정보 네트워크 속 하나의 칩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껏 인간의 경험은 우주에서 가장 효율적인 알고리즘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쏟아지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다. 인간보다 더 효율적인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신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생화학적 알고리즘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알고리즘이 등장한다면 생화학적 알고리즘이 밀려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신도, 인간도 데이터로 대체될 수 있다.
디스토피아를 암시하는 예언서?
<호모 데우스>는 예언서가 아니다. 유발 하라리도 이 점을 책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다. 거대한 변화를 앞두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인공지능이 이끌 디스토피아적 면을 책에서 부각하지만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지 않는다. 여러 가능성 중 일면을 보여줄 뿐이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에 이어서 <호모 데우스>에서도 인류의 결정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결정을 내릴 때 참고할 내용을 담고 있다. 인류가 어디에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함의는 달라진다. 발달한 기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지켜볼 일이다. 호모 데우스가 되려는 호모 사피엔스는 분명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보가 갖는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정보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질서도 정보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데이터교 소개로 끝마친 <호모 데우스>의 이야기는 <넥서스>에서 이어진다. 데이터교에서 신봉하는 정보가 인류사에 있어 정보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인공지능과 함께 살게 될 미래에 어떤 일을 수행할지 후속작 <넥서스>에서 이어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