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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25. 2021

너가 기쁘면 나도 기쁘니까!

원하는 걸 말할 나이가 된 둘째!

크리스마스가 되기 100일 정도 전부터 둘째 놈은 받고 싶은 선물을 줄줄이 통보했다. 1년 전엔 주는 것만 받아도 좋아하던 녀석이 이젠 본인이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는 걸 보면 성장했다는 즐거운 마음과 동시에 모든 걸 다 사줄 수 없으니 고모,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총동원시켜 선물의 가짓수를 제한시켜야 했다.

영상매체를 제한했지만 '이미 틀렸다' 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말이면 패드를 보여줬고 캐치 티니핑 이라는 새로운 만화를 알게 됐다. 분명 또봇만 조심하라고 했던 선배 부모들의 말은 이젠 구시대적 발상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한다. 시크릿 쥬쥬도 여러 명이었고 캐치 티니핑은 무슨 핑 종류는 30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티니핑 집을 사달라, 시크릿 쥬쥬 휴대폰을 사달라, 알라딘에 나온 자스민 공주 옷을 입혀달라, 이거 저거 다 해달라고 하며 아침에 밥 먹을 때마다 본인의 생일이 며칠 남았는지 확인받아야 했다.

본인 생일이 며칠 남았다고 알려야 할 판국에 역으로 나에게 본인 생일이 며칠 남았는지 말하라고 하니 말년병장에게 아침마다 "딸랑딸랑 000 병장님 제대 며칠 남았습니다. 딸랑딸랑" 이라고 하는 속칭 '딸랑이'를 내가 이 녀석이 하고 있었다. 이기주의, 자기중심적 이 아이에게 순순히 며칠 남았고 또 선물을 계속 물어보며 아주 머리에 각인시켜버린 호구 아빠인 나도 참 못 말리는 건 매한가지이다.

12월 첫눈이 꽤 많이 내린 어느 토요일, 첫째님과 키즈카페를 가려다 눈이 너무 와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집 앞에 쌓이는 눈을 보며 눈싸움이라도 할까 했지만 둘째 놈이 감기에 걸려서 나가는 걸 포기했다. 밖에 눈만 조금 퍼와서 집에서 놀자며 아내가 부추겼지만 첫째님과 키즈카페 가는 게 무산돼버리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집콕해버렸다. SNS엔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하는 주변분들의 사진을 보며 '그래도 나갈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잠시 들긴 했지만 코찔찔이 둘째 놈이 저상태로 나가면 평일에 어린이집에 못 갈 테고, 못 간다면 아픈 아이를 맨 종일 돌봐야 하는 주 양육자가 힘들 테니 컨디션 조절을 위해 집콕을 다시 다짐했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둘째 놈은 겨울이 왔으니 선물을 달라고 했다.

본인 생일은 12월 25일인데 겨울이 오면 선물을 준다고 했고 겨울은 언제 오냐고 물었을 때 눈 내리면 겨울이라고 대답했던 걸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겨울은 맞지만 둘째 놈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는 며칠 더 지나야 한다고 설명하니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숫자는 알지만 계산이 안되니 계속 겨울이면 본인 생일이고 눈이 오면 겨울이니 생일이 맞다며 눈물을 흘렸다.

25일은 지금부터 10일 정도 남았으니 하루하루 잘 때마다 숫자를 세면 생일이 올 거라고 겨우 달래다 슬픔에 잠긴 둘째 놈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게 했다. 아빠한텐 당당하던 녀석은 아주 쑥스러워하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크게 말하라고 했더니 내 귀에 대고 대신 전달하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너무 잘해서 가족 이외에 사람에겐 본인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잘 안 보여 주더라!

"받고 싶은 사람이 선물을 얘기해야지"

라고 둘째 놈에게 더 큰 목소리로 말하라고 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커지지 않기에 받기 싫은 것 같아 끊어야겠다고 하니

"아니~~!!" 라고 내 입을 막아버렸다. 큰 목소리로 티니핑 집을 받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걸 알 리 없는 할아버지는 아내한테 돈을 보내면서 원하는 걸 사주라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저 나이 때 아버지는 저렇게 하지 않았다. 어설픈 기억으론 머리맡에 양말을 놓고 자는데 부모님이 양말에 뭔가를 넣고 나가는 걸 본 후로 산타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이후론 크리스마스 선물을 따로 받은 기억은 없었다. 친구네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애들은 애들끼리 놀고, 어른들은 고스톱 치며 노는 그런 날이었지 선물 받는 날은 아니었다. 한 번은 선물을 자전거로 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영어를 듣게 하길 원해서 자전거보다 비싼 휴대용 카세트테이프를 사주겠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자전거라서 울며불며 강조했지만 아버지의 답은 정해졌고 결국은 휴대용 카세트테이프를 사줬다. 학교에서 자랑은 했지만 그때의 그 서운함은 여전히도 마음속에 남았는지 그런 아버지가 손녀한테는 거금을 턱턱 쏘면서 원하는 걸 사주라고 하니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지만 그만큼 손녀 사랑과 함께 우리들의 경제적 손실에 보탬을 주려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2020년 크리스마스엔 백수일 때라 밀 키트로 요리도 하면서 저녁을 먹었는데 올해엔 버젓한 직장인으로 변했으니 요리할 시간은 없었다. 조금 일찍 퇴근하려 했으나 굳이 안 해도 되는 업무를 하겠다고 호언장담 해놨으니 마무리 지어야 해서 이브날에도 정시 퇴근을 했다.

아내는 할아버지가 주신 거금으로 선물을 샀고 남은 돈으로 스테이크를 배 한번 터지게 먹자며 온갖 것을 시켰지만 날이 날인지라 배달음식이 거의 3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고 본인이 받고 싶은 선물 포장지를 뜯어서 팔에 차보며 예쁘다고 거울이 아닌 현관 유리에 비친 모습을 보며 황홀해하고 있는 둘째 놈의 모습을 보면 헛웃음도 나왔지만 녀석이 기쁘니 내 마음도 흡족했다. 그전까지 선물 사달라며 맨날 본인 생일에 대해 강요하던 게 가끔 꼴 보기 싫었지만 저리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사주길 잘했다 생각된다.

부모 마음 다 같으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까! 내 아이 기쁘면 나도 기쁘고 내 아이 배부르면 내가 좀 배고파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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