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잔소리!
백희나 작가가 쓴 알사탕이라는 동화가 있다. 책으로 읽기 전 아내가 뮤지컬 보러 갔다 오라며 첫째님과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갔다. 책 내용을 정말 하나도 모르고 갔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재밌었다. 그러다 아빠의 잔소리 랩에 기립박수를 칠 뻔했다. 하나같이 내가 할만한, 부모가 할만한 잔소리였고 익히 다 들었던 잔소리였다. 그걸 참 맛깔나게 랩으로 했으니 얼마나 멋지고 공감되고 반성도 됐고!
하지만 그다음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 모든 잔소리 이면에는 아빠의 사랑이라는 무대의 영상장치로 인해 감정선을 터뜨려버렸다. 그건 아마도 내용을 알고 갔던 부모들 이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기저기 훌쩍이는 부모들, 그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 왜 우냐며 덩달아 울었던 아이들!
아내한테 가서 뮤지컬에서 봤던 모든 장면은 삭제하고 그 부분만 말했더니 알고 있다고 하며 책을 던져줬다.
'뭐야! 이 책 있었어??' 나만 몰랐던 알사탕 동화책, 그리고 그 책을 봤지만 뮤지컬만큼의 감동은 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둘째 놈은 초등 2학년이 됐고 어느덧 2학년의 끝자락에 있었다. 요즘은 가끔씩,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아이와 대화가 될 때가 있다. 학교는 어땠냐,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냐, 뭐가 제일 맛있었냐 등등 물어보면 대답을 한다. 대답하다가 본인 생각 나는 걸 얘기하면서 이야기는 삼천포로 멀리멀리 빠졌지만 아주 조금씩 대화가 되면서 아.. 아이 키우는 맛 이 조금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성정 한다는 건 점점 뇌의 활동도 많아지고 생각이란 걸 하게 되는, 좋은 신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부모가 알려줘야 할, 가정에서의 예절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 든다. 이걸 잘 알려주지 않는다면 어디서 배우랴!
사회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고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선 예의, 예절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너무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지만 자기중심적인 사고 역시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적당한 지점을 잘 찾을 수 있도록, 그 애매한 경계선을 잘 찾을 수 있는 교육을 시켜야 했다.
둘째 놈은 아침에 밥을 먹을 때마다 멍 하고는 거의 30분간 밥을 먹는다. 첫째님은 너무 서둘러 먹어서 걱정인데 둘째 놈은 너무 안 먹어서 걱정이다. 그 바쁜 아침시간에 이렇게 넋 놓고 멍 하고 있는 둘째 놈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큰 소리가 나온다.
"야! 너 안 먹어??"
근데 매번 이렇게 화내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왜 그렇게 멍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졸리다, 밥 먹다 많은 생각이 난다, 창밖에 풍경을 본다 등등 핑계도 다양하더라.
음식을 입 안에 오래 물고 있으면 치아도 안 좋고 하니 빨리 먹어야 한다고 했고 평소 먹는 시간을 체크해 보니 20분 정도는 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노선을 정하고 그 시간까지는 자유롭게 먹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하니 잔소리도 줄고, 아침에 나 역시 화도 안내서 좋고, 그러다 보니 아침 시간에 둘째 놈과 이런저런 얘기할 시간이 많아졌다. 보통 저녁에 아이들과 밥 먹으면서 하루 일과를 물어보는데 내 경우엔 다음날 아침에 전날의 일과를 물어보게 됐지만 어쨌든 둘째 놈과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화가 많다는 건 매우 좋은 것 이닌가! 근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 아이의 말버릇이 참 없다. 말버릇 이라기보다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애라서 그러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난 잔소리를 하게 된다. 감정적인 받아들임 보단 이성적인 판단으로 아이를 다그치게 됐다. 그게 바로 잔소리로 튀어나가기도 했다. 아이의 편을 들어야 했지만 예의와 예절에 어긋날 경우엔 어설픈 이성적 판단으로 얘기하다 보니 점점 길어지고 결국엔 잔소리로 나가게 됐다.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특정 그룹의 재즈 크리스마스 에디션을 듣는다. 아내는 10년째 듣다 보니 겨울만 되면 그만 틀라며 한숨 쉬지만 난 10년째 들어도 좋으니 올해 역시도 또 틀었고 차에서는 더욱더 크게 틀었다.
뒷자리에서 듣던 둘째 놈에게 이 노래 어떻냐고 물어보니 너무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본인도 피아노를 1년 넘게 쳤으니 이 노래를 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30년을 넘게 피아노를 친 중년의 그 재즈풍 피아노 맛을 네가 낼 수나 있겠냐 하는 마음으로 말해줬다.
"오! 좋아. 근데 둘째야 이 피아노 치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라며 어렵지만 도전하겠다면 응원해 줄게 라는 마음으로 말했는데 갑자기 둘째 놈이 대답했다.
"아빤 피아노도 못 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근데 왜 이렇게 말을 했을까 고민했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말하나? 왜 이렇게 기분 나쁘지? 생각하다 둘째 놈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말해? 아빠는 피아노를 못 치는 건 맞는데 왜 아빠가 못 친다고 대답했지?"
약간 톤을 낮춰서 물었더니 둘째 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물어봤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뭐가 기분이 나쁜지, 아니면 남이 피아노를 못 친다는 걸 깎아내리기 위해서인가... 나 아닌 타인에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이 부분을 고쳐줘야겠다는 내 쓸데없는 고집과 잔소리가 시작됐다.
더욱 입을 다문 둘째 놈을 추긍했다. 이유를 말해보라고, 아빠가 뭘 잘못했는지, 아니 그 이유를 말해라!
결국 울음이 터진 둘째 놈이 말했다.
"아빠가 응원해 줬으면 좋겠어!"
아뿔싸! 둘째 놈이 뭔가를 할 때나, 무엇을 만들어올 때나 항상 난 이성적 판단을 통해 대답을 했다. 아주 감성적인 내가 왜 둘째 놈에겐 한없이 이성적인 아빠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 사랑하니까 더욱더 바른길로,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그렇게 따지면 더 감싸줘야 하는데 그런 건 못하겠더라!
남에게 더 좋은 아이로 보이기 위해서 더욱더 이성적인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그래! 알겠어. 아빠가 앞으로는 응원해 줄게. 아빠가 미안해. 근데 너도 그렇게 대답 안 했으면 좋겠어!"
라며 내가 잘못했다는 사과와 함께 둘째 놈도 남의 약점, 아니 남이 못한다고 그걸 직언하지 않도록 하자고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좋게 마무리하고 평소 가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패밀리레스토랑을 갔다. 가격대는 좀 있어서 쉽게 못 오지만 화낸 것도 미안하고 하니 가서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며 데려갔는데 그만 또 화를 냈다. 먹는 모습이 영 시원찮아서였다.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가서 시킨 음식의 절반도 못 먹었다.
너무 화가 나서 다음부터 안 온다고 했다. 보통 식사비용의 2~3배는 더 나오는데 저 정도만 먹고 남기다니 괘씸하기도 했고 돈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잔소리와 화를 냈더니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나한테 잔소리가 너무 많다며, 아니 아버님이 잔소리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고 하면서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냐며 아버님을 똑 닮았다고 했다.
'보고 배운 게 그건데... 그래도 난 술 먹고는 안 하잖아!'
라고 말했지만 생각해 보니 술 먹고 안 먹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내는 내가 하는 잔소리를 그냥 한 귀로 다 흘리지만 아이들한테는 그게 쉽게 될 리 있나. 아빠가 화난 건 아닌지 눈치를 살피게 되는 아이들 모습에서 그만 나 역시도 술 먹고 주정 부리던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아빠였다.
청렴결백! 아버지의 가훈이었다. 정직함을 무장하고 사회생활 하던 아버지는 사회생활 만랩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술 취하면 끝까지 다 데려다준 후 집으로 올 정도였고 하나를 더 사주면 사줬지 얻어먹지 않는, 그러니 사회생활에선 아버지만큼 존경받는 분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술이 잔뜩 취해서 새벽에 오면 잠자고 있던 우리를 불러서 무릎을 꿇게 하고선 2~3시간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게 너무 싫어서 아버지를 미워하게 됐고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물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다 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지만 여전히 약간의 거리는 있다.
배품과 신실이라는 우리 집 인재상을 갖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내 모습도 누군가에겐 거창하고 멋진 모습이었지만 아이들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잔소리를 멈춰야 했다.
예의와 예절, 중요하지만 이것을 무기로 내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고 잔소리를 1절만 하기로 약속했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참 어렵지만 내가 아버지와 멀어졌던 계기를 기억하며 나중에 아이들과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 위해 기억하려 한다.
잔소리... 가 사랑 이라지만 표현하지 않는 사랑 앞에선 상처밖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