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는 '시나몬 롤의 날(Kanelbullens dag)'이 있다.
독일에 온 후 갑자기 좋아하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한국에선 전혀 내 시야에 들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중 한 가지가 시나몬롤이다.
시나몬롤은 독일어로 zimtschnecke, 시나몬 zimt와 달팽이 schnecker의 합성어이다. 정말 귀여운 단어다.. 처음에는 내가 기존에 알던 그 '시나몬롤'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니었다. 슈퍼에서 장을 보다가 케익류가 있는 코너에서 Pågen Gifflar Zimt라는 이름의 제품을 보았다.
포겐 기플라 짐트는 스웨덴 회사 포겐에서 만든 스웨덴 간식인데, 시나몬 필링이 들어간 작은 사이즈의 이스트 롤이다. 시나몬 맛 말고도 여러 가지 맛을 출시한 것 같은데, 독일 마트에는 빨간색 패키지의 시나몬 맛과 노란색 패키지의 바닐라 맛 두 가지를 주로 파는 것 같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생전 좋아해 본 적도 없는 시나몬롤이 먹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이 시나몬롤을 처음 사기 직전까지 지난 몇 년 동안 단맛이 나는 빵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워도우나 깜빠뉴, 베이글만 주구장창 먹어댔다. 심지어 이 제품을 처음 봤을 땐 zimt가 시나몬인 줄도 몰랐다. 여하간 그렇게 한 번 눈길이 가고 나서 계속 머릿속에 이 빨간 패키지가 맴돌아서 다음번 슈퍼에 갔을 때 덥석 집어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나몬롤과 이유 없는 사랑에 빠졌다..
기플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니 (인스타그램과 공식 홈페이지까지 들어가 봤다 ^^) 이 시나몬롤을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포스팅을 해놨던데,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빵을 찢어 뿌려 먹으라는 둥, 롤 가운데에 초콜릿을 끼워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라는 둥..
그런데 얘는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빵이 딱딱해지고, 냉동실에 얼렸다가 먹어도 썩 식감이 좋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바로는 잘 밀봉해서 서늘한 실온에 보관해 두었다가 우유랑 먹는 게 최고다. 저지방우유나 두유 같은 거 말고, 3.5% 멸균우유 한 컵이랑 먹으면 정말 맛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랩탑 옆에 기플라 한 봉지가 놓여있다..
그 후 두 번째로 만난 시나몬롤은 코펜하겐에서 정말 유명한 Juno The Bakery에서 공수해 온 진짜 시나몬롤이었다. 세상에!!!!!!!!!!!!!!!!!!!!!!!!!!!!!! 정말 정말 정말 정. 말. 정! 말! 맛있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부드러운 우유를 가득 넣은 부드러운 빵에 큰 입자의 시나몬 슈가들이 아주 약간의 매운맛과 엄청난 단 맛을 냈다. 너무 맛있어서 자꾸 먹고 싶은데 동시에 줄어드는 게 아까운 마음.. 내가 이제까지 한국에서 먹어봤던 그 평면적인 모양과 맛을 가진 시나몬롤은 진짜 시나몬롤이 아니었던 것이다.
따뜻한 블랙커피나 데운 우유와 궁합이 정말이지 환상이었다.
기플라도 스웨덴 회사이고, 덴마크에서 이렇게나 맛있는 시나몬롤을 판다니 북유럽의 시나몬롤이 원래 유명했던 건가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스웨덴 말로 시나몬롤은 "Kanelbullar"라고 한다. 이 단어도 '시나몬 Kanel'에 '롤 Bulle'를 더해서 만들어진 단어인가 보다. 시나몬롤은 1920년대에 스웨덴에 처음 등장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설탕과 향신료의 수입이 가능해지면서 시나몬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북유럽의 시나몬롤은 풍부한 향신료와 부드러운 반죽, 적당한 달콤함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내가 먹고 느낀 바와 완전히 동일하잖아) 특히 스웨덴의 Kanelbullar는 종종 진한 계피와 카르다몸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카르다몸(Cardamom)이란 생강과에 속하는 식물의 씨앗에서 추출한 향신료로, 독특한 향과 맛이 있다고 한다. 내가 느낀 매운맛이 아마도 카르다몸의 맛이었나 보다. 카르다몸은 전통적으로 인도, 중동, 스칸디나비아 요리에서 많이 사용되고, 특히 스웨덴의 피카(Fika) 문화에서 카르다몸을 첨가한 다양한 빵과 페이스트리들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스웨덴에 피카(Fika)라는 독특한 커피 브레이크 문화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Fika라는 단어는 19세기 스웨덴어인 "Kaffi(커피)"에서 유래했다. 스웨덴어의 음절을 바꾸어 만든 이 단어는 커피가 몇 차례 금지되었던 시절에 비밀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커피가 금지된 시기가 끝난 후 스웨덴에서는 커피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현재에는 가족, 친구, 동료와 함께 커피나 차를 마시며 단 것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휴식 시간을 의미하게 되었다.
Fika는 단순한 커피 브레이크라기보다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회적 활동이라고 한다. 많은 스웨덴 직장에서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Fika time을 가지면서 커피와 함께 케이크나 과자를 즐기며 대화를 나눈다. 이때 가장 인기 있는 간식 중 시나몬 롤(Kanelbullar)과 카르다몸 빵(Vetebullar)이 있다.
여러 가지 정보 중 나를 가장 즐겁게 만든 것은 스웨덴에 '시나몬롤의 날'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귀여움의 끝판왕.
시나몬롤의 날(Kanelbullens dag)은 매년 10월 4일에 기념되는 날로,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시나몬 롤의 전통을 기념하고 가정에서의 제빵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1999년에 만들어졌다. 2022년 기준 스웨덴 인구수가 1049만 명인데, 시나몬롤의 날에 스웨덴에서 '판매'되는 시나몬롤만 약 700만 개라고 한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시나몬롤은 굽는다니, 시나몬롤의 날에는 거의 스웨덴 전 국민이 시나몬롤을 먹나 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귀여운 명절이 생기면 좋겠다. 배경은 좀 다르긴 하지만 빼빼로데이랑 비교할 수 있으려나?
올해부터 나도 매년 10월 4일에 시나몬롤의 날을 챙겨야겠다. 올해 10월 초에는 채원이 독일에 오기로 해서 스웨덴에 직접 갈 수는 없겠지만 집에서 시나몬롤을 만들어서 다 같이 나눠먹어야겠다!
요즘은 베를린에 있는 zimtschnecker 전문 베이커리를 찾아다닌다. 오늘은 winterfeldstraße에 있는 hey schnecker에서 디카페인 카푸치노와 초코 비건 슈네커를 먹었다. 새로운 시나몬롤 가게를 찾고 싶어서 일부러 맵에서 검색해서 갔던 건데, 가서 보니 얼마 전 갔던 Viktoria-Luise Platz 옆에 있는 가게와 똑같은 가게였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봤던 빵들이나, 코펜하겐에서 사 온 빵은 다 예쁘게 하나씩 만들어진 빵이었다면, 이 카페에서 파는 시나몬롤들은 하나의 팬에 꽉 채워져서 빵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래서 빵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빵과 붙어있는 면들을 잘라내야 하는데, 나는 이것조차 귀여워서 좋았다.
카푸치노가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다. 커피 소서에 고무로 된 미끄럼방지 패드가 귀엽게 숨어있었다.
시나몬롤 맛은.. 그냥 그랬다. 이 가게의 빵이 맛이 없다기보다는, 독일의 빵들이 전반적으로 우유와 설탕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퍽퍽한 빵이라서 그런 특징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 같다.
다음에는 Kreuzberg에 있는 Die Zimtschnecke Kreuzberg에 가볼 생각이다. 제일 위에 올라와있는 리뷰어는 "Just the best Zimtschnecke I ever had." 라는데, 쫜득함 0인 독일의 베이글에도 극찬하는 베를리너들이기에 썩 믿음직스럽진 못하지만 :D 새로운, 맛있는 취미가 생겨 아주 기분이 좋다.
zimtschnecker야 사..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