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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Nov 08. 2022

결함의 쓸모

과학과 에세이

결함 덩어리, 혹은 결점 투성이. 조금은 비관적인 성격 탓에, 장점보단 결점을 내게서 찾아내는 일에 익숙했다. 그리고 때론 거기에 깊게 빠져 한동안 침잠되기도 한다. 왜 이렇게 부족한 점이 많을까 하며. 실수가 반복되던 날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를 하자가 붙은 불량품이 아닐까 하고. 누구에게나 결함은 있다지만, 나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내게 붙은 결함 자국은 자꾸만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애써 고개를 돌려봐도 또다시 눈에 들곤 하는 자국들. 어떻게든 털어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다분했기에, 결함은 정말 탈탈 털어내야만 하는 거냐며 애써 합리화를 시킨 적도 숱했다. 쉽게 털어지면 결함이 아닌 먼지 한 톨일 테니까. 그럴 때 해야 할 일은 억지로 감추거나 하는 강압적인 노력이 아니었다. 보다는 결함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면, 결함이었던 파편들이 도리어 나를 일궈주는 결정이 되어 줄 수도 있음을 알았던 순간이 있다.


비관에서 벗어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애초부터 비관 자체를 하지 않거나, 얼마간 스며든 비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첫 번째보다는 할만한 두 번째 방법이다. 지고지순한 덩어리보다 이것저것 불순물이 섞인 게 훨씬 단단한 법이다. 순수한 고철에 여러 성분을 넣어 강철을 만드는 것도 다를 바 없다. 섞여 들어간 불순물 여럿 덕에 여리던 처음 상태에서 갈라지고 깨어지는 정도를 낮춰준다. 그렇게 강도를 올려간다. 단일한 순금이 값지고 반짝거린다지만, 이것저것 불순물이 섞인 합급에 비하면 한없이 무르고 약하기만 하다.


내게 묻은 얼룩들을 마저 살폈다. 조금 부족하니까 더욱 섬세해질 수 있던 점도 분명 존재했다.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 덕에 말을 수려하게 하지 못하지만, 대신 귀를 열고 말을 아끼며 혹여나 실수하진 않을까 돌아볼 수 있었다. 위로나 칭찬을 쉽게 건네진 못하지만, 섣불리 꺼낸 말에 진심이 바래지 않을까 한 마디를 아껴가며 상처주진 않을 수 있었다. 눈앞에 주어진 걸 재빨리 해내진 못하지만, 허술하지 않도록 꼼꼼히 챙겨낼 수는 있었다. 풍족하게 지내온 편은 아니었지만, 돈 관리를 자연스레 체득했고 절약하는 방법에 자신이 있었다. 결함 때문에 순탄치는 않았지만, 덕분에 성장할 건덕지 또한 많았다.


유전적 결함, 외적 결함과 내적 결함. 왜 다들 결함부터 찾아내는지 싶었다. 중고차 살피듯 결함부터 체크한다. 미달된 건 없나 하거나, 나보다 못한 건 어디 없나 하면서. 속으로 평가하고 저울질한다. 두려움이 컸다. 덩달아 성격이든 외모든, 능력이든 가진 것이든, 뭐든 평균점에서 내려가지 않으려 버텼다. 결손을 감추고 결흠을 덜어내고 싶었다. 바보 같지만 그랬다. 결함이 보이면 왠지 절하당할까봐 황급히 숨기고, 결점이 드러나면 혹시 실망할까봐 가쁘게 덮었다. 그런데 그렇게 보여진 내 모습을 정작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그 모든 전부를 내 마음대로 꾸밀 수도 없는 법인데. 화장으로 어떻게든 뾰루지를 가려내도 깨끗한 물 앞에선 결국 모조리 드러날 자국인 건데.


그런 결함, 이젠 있어도   같다. 결함 없는 사람 없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있어할 때도 있었다. 굳이 두려워 배척할 존재라기보단,  이용해 내야  것들. 결국엔 얼마간 지니고 함께 가야  것들이다. 그걸  조합해내고 녹여내면 되는 일이니, 부끄러워 하진 않는다. 부끄러운 일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결함이 있더라도 없는 척하며 살아갈  부끄럼은 더욱 드러나기만 하는 법이다.


떨림이 있어도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되려 한다. 뭐든 잘난 사람보단 극복하는 사람이 빛난다. 여타 시작부터  해내는 사람보단 끈기를 놓지 않는 사람이 여운을 남긴다. 여느 스포츠 경기든, 엉성했던 언더독의 반란이 더욱 짜릿한 이유다. 그러니 태초부터 단단한 사람이 되진 못했지만, 그닥 부럽지도 딱히 애타지도 않는다. 결점이 많은 사람인  아니까, 이제는 결점을 먼저 보듬는다. 한없이 약점이기만   알았지만, 되려 극복해나가며 단단히 결속시켜  결함을 사랑해 본다. 결함의 쓸모를 믿는다. 결함이 있기에, 역전할 기회도 충만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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